칼럼니스트가 두려워하는 대통령

2015.11.24 21:06 입력 2015.11.24 21:20 수정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2006년 한 해 동안 H신문에 칼럼을 썼다. 당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글쓰기 훈련이 덜 된 데다, 내가 쓴 글을 전 국민이 본다는 착각 때문에 그나마 있는 실력을 다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당시 대통령이 처한 현실이었다. 칼럼을 쓸 때 나름의 원칙이 있긴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더 비판하자.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대통령보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가 비상식적이었으니까. 무슨 일만 하려 하면 ‘친북’ 딱지를 붙였고, 사람을 하나 쓰면 ‘코드인사’라고 거품을 물었다.

[서민의 어쩌면] 칼럼니스트가 두려워하는 대통령

기록적인 영남편중인사를 자행하는 현 정부에 아무 소리도 안하는 걸 보면, 그들의 비판은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진보세력들까지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모두가 대통령을 욕하다 보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욕할 필요가 있을까? 3주에 한 번씩 칼럼이 연재됐는데, 늘 쓸 게 없어 고민이었다. 할 수 없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을까?” 같은 시답잖은 글만 쓰다 잘렸다.

2010년, 경향신문에서 불러준 덕분에 다시 칼럼을 쓰게 됐다. 한번 실패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걱정이 됐다. 게다가 이번엔 2주마다 한 번씩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다 괜한 걱정이었다. 맛집의 비결은 좋은 재료를 충분히 쓴다는 것, 글쓰기도 이와 다르진 않다. 좋은 소재만 있다면 글쓰기 실력이 좋지 않다고 해도 남들이 읽을 만한 글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을 쓸 소재를 제공해 줬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충격적인 것들이라 도대체 뭘 가지고 써야 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20조원을 써가며 멀쩡한 강바닥을 파서 자신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에 큰 이익을 안겨줬고, 대선 때 약속한 전 재산 헌납도 결국 ‘꼼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4대강보다 더 많은 돈을 퍼부었고, 국민 세금으로 아들에게 내곡동 땅을 사주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의 언행도 큰 화제가 됐다. 웬만한 일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상대의 입을 막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처럼 돼 있는 유체이탈화법도 사실은 이명박이 원조였다. 예컨대 내곡동 사저가 문제가 됐을 때 이명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민의 어쩌면] 칼럼니스트가 두려워하는 대통령

“본의 아니게 사저 문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 시절은 칼럼니스트들의 전성기였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해 팟캐스트들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명박의 얘기를 다루기엔 신문지면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이면 매주 쓸 수도 있겠어!”라고 말하기도 했고, 실제로 경향 측에 칼럼 두 개를 보낸 뒤 “알아서 선택하시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칼럼니스트의 호시절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끝났다. 박 대통령은 기이할 정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씀을 많이 하시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하시는 말씀은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2015년 5월 국무회의 도중 하신 말씀을 보자.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해석이 돼야 칼럼으로 쓸 텐데,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듣지 못하니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2주라는 마감기간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짜내듯 보내는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칼럼을 그만 쓰겠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차 대통령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그간 소재 고갈로 힘들어하던 분들이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환호했고, 신문 오피니언난의 대부분이 국정화 관련 글들로 채워졌다.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당분간은 국정화로 끌고 나갈 수 있지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50여번 더 글을 써야 하는데, 무슨 수로 채워야 할까? 남은 임기 2년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고인은 깜짝쇼를 좋아했고, 자화자찬 기질도 좀 있었다. 실명제를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놀랬지?”라며 즐거워한 대목이라던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하자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었다”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와중에, 그분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 내가 칼럼을 썼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스스로 내린 결론, “지금보다야 나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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