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

2017.04.01 16:34 입력 2017.04.08 13:23 수정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당내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후보들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다. 반전 드라마는 없었고, 이른바 ‘대세론’의 재확인이다. ‘대세론’은 19대 대통령 선거일인 5월 9일까지 유지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변은 없었다. 정치공학은 통하지 않았다. 각 정당의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결과다. 전국 순회경선을 실시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후보로 선출될 전망이다. 두 정당의 경선은 ‘완전국민경선’으로 치러지는 만큼 ‘바람’이 불고 ‘반전 드라마’가 연출되는 결과를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중간결과만 보아도 결과는 ‘대세론’의 재확인이다. 두 사람은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낸 ‘정치 신인’이었지만, 이번에는 ‘준비된 후보’가 돼 대세론의 주인공 자리를 다투고 있다. 보다 일찍 후보를 확정한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의당은 심상정 의원,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경남지사를 후보로 확정했다. 모두 당내에서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후보들이다.

매번 정치 신인이 등장해 깜짝 열풍을 일으키던 한국 정치의 기존 선거 문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전문가들은 ‘촛불정국’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적인 과정이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대세론의 선거’를 만든다고 봤다. 특히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문 전 대표의 경우 대세론 자체가 4년에 걸쳐 아래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같은 대세론이라도 ‘이회창 대세론’과 ‘문재인 대세론’은 완전히 다르다. 이벤트나 정치 엘리트들의 이합집산으로 대세론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3월 31일 부산 동래구 부산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영남권역 순회 경선에서 64.7%의 득표율로 3연승을 확정짓고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3월 31일 부산 동래구 부산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영남권역 순회 경선에서 64.7%의 득표율로 3연승을 확정짓고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세론 때문에 가능했던 판

민주당이 1월 24일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한다고 발표했을 때 당 안팎에서 쏟아진 불만의 목소리는 크게 세 갈래로 볼 수 있다. ‘야권 전체 공동경선’을 주장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의 반발이었다. 이 목소리는 정당을 근간으로 하는 ‘책임정치’의 원칙에 어긋나고 야3당으로 갈라진 지지자들 간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원과 비당원에게 아무 차이를 두지 않는 방식의 국민경선 역시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고 권리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당원들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세 번째는 ‘역선택’에 대한 우려였다. ‘경선흥행’을 노리는 마케팅적 관점에서건 혹은 경선권을 비당원들에게 개방하는 방식이 좀 더 민주적이라고 믿는 관점에서건 “취지는 좋은데,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보수층이 유입해 당심과 지지자들의 민심을 왜곡하는 효과가 예상된다”는 입장이다.

흥미롭게도 세 가지 우려 모두 ‘문재인 대세론’과 관련이 있다. 민주당 전체 차원에서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세론’ 때문에 ‘완전국민경선’을 해야 했고, 가능했다. 야권 공동경선, 광장국민경선론은 문 전 대표가 당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서 당내 기반이 취약한 후보들에게 기회가 없다는 불만이었다. 반대로 문 전 대표를 지지해온 당원들은 부당하게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로 봤다. 총선을 앞두고 문 전 대표의 호소에 온라인으로 입당한 권리당원의 규모는 20만명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시민에 대한 정치권력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특정 정당의 후보를 뽑는 데 책임을 갖지 않은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것은 현실을 감안한 ‘마케팅적 원리’라면 모를까 ‘민주주의’ 원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선택’은 문재인 후보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어나는 우려다. 당 선관위 부위원장인 양승조 의원은 2월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0만명이 참여한다면 역선택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박사모가 실제로 행동을 해서 몇십만 명이 동원된다면 커다란 문제가 있다”며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없고, 우리 당 열성 지지자들과 탄핵을 걱정하는 분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많은 국민이 더 많이 참여해 (역선택을) 봉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의 언론지원단장을 맡은 박광온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 글에서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거대한 참여물결에 역선택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선거인단 100만, 200만, 300만이 되면 일부 악의적인 역선택은 자연스럽게 정제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국민만 보고 가자”고 적었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상황이니만큼 200만명 이상의 선거인단이 몰려올 것이며, 20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선에서 역선택이 있더라도 실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이 자신감의 근원도 결국은 문 전 대표의 높은 지지율과 ‘대세론’에 있다. 대세론을 입증하듯 문 전 대표는 경선에서 파죽지세다.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60%, 안 지사 안방인 충청에서 47.8%, 본인의 연고지인 영남에서 64.7%로 누적 59.0%의 표를 얻었다. 수도권에는 전국 선거인단 유권자의 60%가 몰린 데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문 전 대표의 지지자가 많아, 결선 없이 본선행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세론’에서 ‘이회창 대세론’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대세론만 믿다 오만한 이미지로 비쳐지거나 메시지 관리 등에 실패해 오히려 본선에서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3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당 일부 구성원들이 마치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하는데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아직 정권교체를 하지 못했다. 구성원 모두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가다듬으며 대선에 임하도록 함께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 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전북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19대 대선후보 선출 완전국민경선 전북 권역 합동 연설회에서 두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전 국민의 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전북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19대 대선후보 선출 완전국민경선 전북 권역 합동 연설회에서 두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세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세론’은 ‘이회창 대세론’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평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문재인 대세론은 촛불민심의 힘이 크다. 촛불정국을 거치며 2002년 선거 때의 ‘정치 엘리트 교체’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적폐청산)는 열망과 그러기 위해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안 지사는 대연정 주장과 선의 발언으로 적폐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없다는 이미지를 쌓았고, 이 시장은 낮은 인지도로 야권 지지층 대다수에게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불안한 사람으로 인식됐다. 지역적으로 영남의 지지를 받는 것도 문 전 대표에게 우호적 조건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국민경선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의 말에서도 김 교수의 분석이 확인된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직장인인 송모씨(32)는 31일 ARS 선거에 참석했다. 촛불집회에 몇 차례 참여했고, 총선에서는 정의당을 찍었다. 송씨는 “누군가에 대한 팬심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경선에 흥행한다면 정권교체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장모씨(35)는 “2012년 선거에서 (문 전 대표가) 패했을 때 참 안타까웠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실정을 할 때마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고동락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권리당원 김모씨(29)는 “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당원이 됐다. 노 전 대통령처럼 당에서 기반이 없고, 계속 당 안팎에서 흔들도록 두면 실패한다는 것의 학습효과”라고 말했다. 다른시기, 다른 후보들이 태생적으로 가지기 어려운 점이다.

즉, 문 전 대표에 대한 팬덤은 정치 엘리트들의 선택에 의해 하루아침에 이뤄진 팬덤이 아니라 짧게는 촛불정국, 길게는 2012년 대선 혹은 노 전 대통령의 사망 때로 거슬러 올라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다. 당원 활동, 팟캐스트 청취, 촛불집회 참여 등 지지자들이 몇 년 동안 정치 콘텐츠를 소비하고 참여함으로써 만들어낸 대세론이다. 이 점에서는 2002년 ‘노풍’과도 차이가 있다. 반대로 ‘반기문 열풍’, ‘황교안 열풍’ 등 인물에 기댄 보수의 ‘반문재인’ 움직임은 거듭 실패하고 있다. 기대를 걸 대상이 바뀔 때마다 지지율이 낮아지는 모양새다.

바꿔 말하면 문재인 대세론을 넘어서려면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같은 ‘위로부터의 개편’이 아니라 ‘촛불민심의 심리’를 핵심적으로 찔렀어야 한다. 민주당 내 경선에서 안 지사가 역전을 위해 꺼낸 카드는 ‘대연정’이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대연정론의 경우 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은 깊이 공감한다. 아무리 개혁의지가 충만하고 좋은 법안을 발의해도 상임위에서 자유한국당이 꿈쩍도 안 하면 통과시키기 어렵고 결국은 타협을 해야 하며, 어디까지 양보할지 확실한 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타협을 포기하면 적폐를 청산할 수 없고, 결국 국세청과 검찰을 동원해 상대방을 압박해가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적폐”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 문제의식을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연정’은 ‘선의’ 발언으로 인해 취지를 알릴 기회를 상실하고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이라는 꼬리표가 당내 토론회 내내 따라다녔다.

민주당의 경선 토론방식상 이 같은 논의를 차분히 하기 어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상파 TV 첫 경선토론회를 앞뒀던 3월 1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토론방식을 통보받았다. 총 90분에, 미리 써와 읽거나 외워 발표할 수 있는 사전질문이 4개이고, 주도권 토론은 겨우 9분씩”이라고 지적했다. 라디오·인터넷 토론은 총 2시간에 주도권이 17분씩 배정됐던 것에 비해 “한참 후퇴했다”는 것이 이 시장의 주장이다. 안 지사는 3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 캠프의 태도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 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라고 적은 데다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경선 갈등을 수습하는 일은 대선 및 집권 이후에도 당의 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가 2016년 12월 3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해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은 박근혜 정부 기간 내내 정권에 비판직이었던 시민들의 의지가 뭉쳐 형성됐다는 점에서 이전 대세론과 차이가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표가 2016년 12월 3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해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은 박근혜 정부 기간 내내 정권에 비판직이었던 시민들의 의지가 뭉쳐 형성됐다는 점에서 이전 대세론과 차이가 있다 /연합뉴스

■실력경쟁이 아직 남았다

‘대세론’은 5월 9일까지 유지될까. 김윤철 교수는 “(문재인 대세론의 특성상) 제3지대론 등과 같은 ‘정치기술적 관점’에서는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정당의 후보들이 결정되고 본선에 돌입하면, 중도성향 유권자를 잡는 것이 중요해진다. 안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사드 배치도 그렇고 정국 안팎으로 불안해서 지속가능한 개혁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나 2012년 대선 패배로 시작하는 울분의 역사와 정서를 온전하게 공유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대거 유입되는 본게임에서는 결국 실력 경쟁이 변수다.

31일 갤럽 조사에서 여론지지율 2위로 뛰어오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실력 경쟁에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촛불민심’과 ‘탄핵’으로 대변되는 ‘개혁’ 요구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과 ‘정서’가 다른 유권자들이 안 전 대표에게 몰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안 지사의 경선 승리 가능성이 옅어지면서 표가 안 전 대표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8·29일 실시, 3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후보와 안 후보가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각각 41.7%대 39.3%를 기록, 격차가 오차범위(± 3.1%포인트) 내로 좁혀진 것으로 조사됐다.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대연정’ 논쟁이 벌어질 때 경제분야, 산업분야, 교육분야 등의 공약을 하나씩 내놓으며 ‘실력우위론’을 구축하려고 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결국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다시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며 “당원들도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될 때까지 계속 노력을 해왔고, 문재인 전 대표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도록 검증된 사람에게 당심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안철수 대세론과 문재인 대세론에는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준비된 후보’들은 제각각 색깔을 내세우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친노동’을 내세운 선명한 진보색을, 유승민 후보는 ‘경제전문가’와 ‘안보전문가’라는 두 가지 역량을, 홍준표 후보는 ‘선명한 보수 이념색’을 각자 무기로 내세운다. 대세론의 선거에서 대세가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비문’을 내세운 이합집산은 변화의 지렛대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 인용된 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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