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별법 합의’의 의미

2014.09.30 21:32 입력 2014.09.30 21:36 수정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세월호 참사 167일째인 어젯밤, 특별법 제정안에 대한 여야 대표 간 합의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여전히 10명의 실종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은 심리적 치료와 치유 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농성 중인 참담한 상황에서 기대와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도대체 왜 300명이 넘는 생명이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져가야 했는지에 대한 진실 발견과,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단죄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직 대표 간 합의에 대해 양당 의총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정한 첫발’을 이제 겨우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세월호특별법 합의’의 의미

냉정하게 바라보자. 왜 이렇게 늦어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하나다. ‘정치적 계산’을 빼면 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우리 모두는 분노와 참담함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분노와 위로의 공감대’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대통령의 책임’ 문제가 중심에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쪽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주장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심지어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유가족을 ‘대통령 공격하는 매국노’라며 비난한다.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구조하지 못하게 한 주범’이라며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그리고 여당이 져야 한다.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유가족의 분노와 울분을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었다면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었을 리 없다. 두 번째 큰 책임은 야당에 있다. 당내 분열과 다툼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 등 내홍을 겪던 야당은 정부·여당 못지않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고 초기엔 철저한 무기력과 침묵으로, 대중의 질타를 받은 뒤엔 정치적 투쟁으로, 세월호 못지않은 ‘급변침’의 모습을 보였다.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규명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지난 반년간의 줄다리기 중에 사라져버린 증거들과 심경이 변화된 참고인들, 서로 공모·결탁해 말을 맞춰버린 관계자들로 인해 진실 발견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보다 더 중요할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절차가 시작되면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려 할 것’이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불안과 공포, 쉽게 합의해 원만하게 진상조사가 이루어져 ‘대통령과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야당의 두려움과 공포가 만나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이 두 공포가 만들어낸 ‘세월호 정치’는 ‘적폐’의 일부인 해운비리 관련 정치인과 역대 정권 고위 공직자들에게 면책과 도피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반면에, 졸지에 참극을 겪은 피해자 가족에겐 ‘지옥’에 갇힌 시간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다. 가족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 앞에서 어떤 일이라도 해보겠다는 단식이 정치행위로 오인받고, 폭식 퍼포먼스라는 치졸한 조롱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정치인이 마련한 술자리 끝에 또 다른 약자인 대리기사와 행인을 폭행한 ‘범죄 혐의자’로 전락되고 있다. 무엇보다, ‘단원고 유가족’과 소위 ‘일반인 유가족’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반년간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여당 그리고 야당의 책임자들과 의원들은 ‘가해자’였다. 이제 더 시간을 끌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양측 모두 대립과 공격의 관행을 내려놓는 용기와 겸허함을 보여야 한다.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의 대표자’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지지세력의 비난과 찬사 앞에 비겁한 동조와 연기를 보이던 습관을 거두어야 한다. 분명히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전과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보다, ‘세월호의 진실’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