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비판적 이성’으로서의 과학역할

2000.09.01 19:05

과학은 생산력과 직결되는 ‘도구적 이성’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까지 파악하는 ‘비판적 이성’의 성격을 지닌다. 유전체의 구조와 그 속의 정보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는 이용해서는 안되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과학의 힘은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힘이 커지는 만큼 비판적 이성으로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인류의 멸살만이 아니라 생태계를 교란·파괴할 힘을 갖게 된 오늘날 그 힘을 제어할 이성은 필수적이다.

자신의 좁은 영역에만 관심을 둘 뿐 그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과학자는 일상적 삶과 전문과학자로서의 임무에 아무리 충실하다 할지라도 바람직한 과학자라고는 할 수 없을 터이다.

과학자는 어떻게 자신이 하는 일의 사회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 핵분열에 관한 ‘순수한’ 연구가 원자폭탄 제조로 연결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신경계의 흥분전달물질에 관한 연구가 인간 통제에 사용될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는 개인 과학자로서는 해결 불가능한 숙제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면 사회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여태까지처럼 소수의 관계자가 모든 것을 장악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설사 가능하더라도 그 귀결은 철저한 관리·독재 사회일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은 과학기술 정보의 공개와 사회적 검증이다. 공개를 통해 과학기술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사회적 의미를 곧바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지적 자원인 정보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당위적 차원만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전략이다. 또한 국가간의 무한경쟁이 찬양되는 오늘날 현실성이 적게 비칠지 모르지만 선진 과학기술의 국가간 이전(공유)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예컨대 환경보존 과학기술을 그린라운드의 구상처럼 세계 지배의 배타적 도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공동의 자산으로 전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과학교육의 쇄신이다. 여태까지의 과학교육은 대부분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과학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제는 비판적 이성으로서의 과학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과학과 사회의 관련에 관한 영역이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교육은 전문 과학기술인에 대해서 더욱 철저히 시행되어야 한다.

과학문명이 통제력을 잃고 비대해지기만 해서 마침내 인류와 생태계, 그리고 과학 자체를 파탄시킬 미래를 막기 위해서 인류와 과학기술인들은 새로운 윤리적 이성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여러 답지 가운데에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유일한 답안의 내용을 어떻게 실천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황상익(서울대 교수·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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