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제언]왕따된 실업교육에 희망을

2000.11.01 16:47

오늘의 실업교육은 고교 전체의 약 절반을 차지할 만큼의 몸체를 가졌음에도 교육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온 국민이 해마다 한 차례씩 총동원되곤 하는 대입 수능시험에서도 소외돼 있고, 몇 년째 진행중인 정부의 교육개혁에서조차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교육부는 직업교육의 중심을 전문대학 이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오직 대학 문을 여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도 교육청과 사립 실업계고교 재단도 기다렸다는 듯이 인문계 고교에 비해 학교 운영비가 많이 드는 실업계 고교를 인문계 고교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 정부 정책은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가 곧 평생교육체제의 근간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고학력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국가 경쟁력이나 개인 삶의 질이 향상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중학교 교육과정에는 개인의 취미나 적성 및 희망에 따른 진로 탐색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교사나 학부모 모두가 중학교 단계부터 대학입시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계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실업계 고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취미나 적성보다는 성적에 의해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는 2진법 수준의 진학지도에 의해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게 되고, 낙오되었음을 확인하며 희망을 잃어버린다.

실업교육 부실의 원인은 학령인구의 감소, 인문교육을 중시하고 실업교육을 경시하는 잘못된 인식, 공정한 게임을 저해하는 각종 실업교육제도다. 일반적으로 실업교육 대상은 학력수준이 낮은 소외계층이다. 따라서 실업교육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배려는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회균등의 차원을 넘어 보장적 평등의 개념을 도입할 때 가능하다. 비록 입시중심의 교육기관에서 탈락한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삶과 진로에 대한 희망까지 빼앗아서는 안된다.

한계상황에 다다른 실업계 고교를 반쪽 인문계 고교로 전환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실업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실업계 고교를 정상적인 직업교육 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산업현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인력양성 방식 역시 그 추세에 따라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능인력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실업교육을 통해 변하는 추세와 수요에 맞춰 양질의 기능인력을 공급하려는 노력은 21세기에도 필요하다.

실업계 고교생들이 대학 진학이나 졸업 후 현장에서 실업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정신적·경제적 차별도 받지 않는 그런 교육제도나 사회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실업계 고교에 들어오게 된 동기가 어떠하든, 부모의 요구가 어떠하든, 그리고 사회의 풍토와 변화가 어떠하든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있는 직업교육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직업교육을 해야 한다.

/하인호·인천선화여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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