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병원·카이스트 연구팀, 우울증 원인 밝혀
“24시간 주기 ‘일주기 생체리듬’ 교란 때문”
장기간 수면패턴 붕괴 때 발생···“충분한 수면 필수”
기분장애가 있는 환자들에게 우울 증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인체의 생리현상이 반복되는 현상을 뜻하는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와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김재경 교수 연구팀은 이같은 내용의 연구를 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규명해 국제학술지 ‘이바이오메디신(eBioMedicine)’에 게재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진은 기분장애 전향적 코호트 연구에 참여한 환자 중 장기간 웨어러블기기를 착용한 139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기분장애는 기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상당기간 정상 범주를 벗어난 상태의 기분이 유지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흔히 조울증이라 부르는 양극성장애나 우울증이라 부르는 주요우울장애 등이 기분장애에 포함된다. 기분장애 환자들은 기분이 악화되는 것을 심각한 정도로 반복해 경험하는데, 이런 기분증상의 악화는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분 악화와 생체리듬 교란 중 어느 쪽이 원인인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비롯해, 수면패턴의 변화 등이 기분 악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
연구진은 환자들이 착용한 웨어러블기기를 통해 수집한 수면패턴과 일주기 리듬 데이터, 매일 스마트폰으로 작성한 기분 증상에 관한 설문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수학적 모델을 활용해 일주기 생체리듬 정보를 계산했고, 총 4만일 이상 기간 동안 수집한 데이터를 ‘전이 엔트로피’ 방법을 사용해 기분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과의 인과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기분장애 환자에게서 일주기 생체리듬이 교란되면 기분 증상을 악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주요우울장애와 양극성1형장애 환자에게선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기분증상의 악화에 각각 66.7%와 85.7%의 비율로 높은 인과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양극성2형장애 환자에게서는 이런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인과관계를 뒤집어 반대로 기분 증상의 악화가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지를 살펴봤을 때도 모든 종류의 기분장애에서 뚜렷한 인과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수면패턴만 놓고 봤을 때도 기분증상 악화와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었다.
연구진은 단기적인 수면패턴의 변화가 아니라 일주기 생체리듬이 흔들릴 정도의 장기적 교란이 기분을 가라앉고 처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점과 함께, 안정적인 기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규칙적인 수면은 물론 적절한 빛 노출 등의 방법을 활용해 일주기 생체리듬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경 교수는 “장기간 수면패턴이 무너지면 비로소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발생한다”며 “2주 가량의 객관적인 수면 및 빛 노출 정보가 있으면 일주기 생체리듬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헌정 교수는 “실제 기분장애 환자의 치료에서도 기존의 약물치료에 더해 디지털 치료기기를 이용해 일주기 리듬을 측정·관리하면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