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토정비결 제2부] 당취 (464)

2001.02.01 16:43

-제61장 복사꽃 피던 날-

-태합 전하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다들 아는 거짓말이지만 덕천가강은 계엄을 선포하고는 풍신수길의 시신을 소금궤짝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철병하라는 풍신수길의 명령서를 들고 조선으로 떠났던 전령을 도로 붙잡아들이고 대신 가강에게 포섭된 승태가 독전서를 적어 보냈다. 수길의 유언대로 일본군이 곧바로 철병할 경우 조선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할까봐 두렵기도 했고, 자신이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희다 수가, 소서행장, 모리수원, 도진의홍 등의 전력이 소진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전쟁은 의미없이 몇 달 더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등청정, 소서행장 등은 밀려드는 조명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죽을 힘을 다해가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공식적으로 철군 명령이 내려진 것은 일본군이 더 이상 저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다. 심지어 이순신의 수군을 뚫고 철군할 힘조차 없었다. 그래도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머리가 잘리고 꼬리가 잘리면서도 일본군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에서 탈출하였다.

묘향산 유점사.

휴정 일흔아홉살, 유정도 어느새 쉰다섯살이 되었다. 당취가 되어 전쟁터를 누벼온 불두의 나이도 세월 따라 서른한살이나 되었다.

유정이 이끄는 승군은 원래 동로군에 들어가 가등청정군을 상대로 싸웠다. 그러다가 다시 서로군에 편입되어 순천성의 소서행장군과 맞섰다. 이때 그는 전국 사찰에 긴급 격문을 띄워 승군과 서로군이 먹을 군량 4천석을 조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은 갑자기 철군을 서둘렀다.

동부, 중부, 서부에 걸쳐 지루하게 대치하던 조명연합군은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철군하는 일본군 후미를 물어뜯고 꼬기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이순신 제독은 유탄에 맞아 숨지고, 일본군은 대부분의 병력을 바다에 떨어뜨린 채 간신히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군이 물러가자 휴정은 유정을 금강산 유점사로 불러들였다. 묘향산에 주석 중이던 휴정은 일부러 금강산까지 내려와 전쟁터에서 돌아온 제자 유정을 맞아들였다.

“아니, 스님, 제가 올라가면 될 것을 왜 이 먼 길까지 내려오셨습니까?”

“구름처럼 물처럼 살아온 내가 여기쯤 내려온 게 뭐 그리 어렵겠느냐”

아무래도 이상했다. 일흔아홉살이나 된 휴정이 일부러 걸음했다면 뭔가 모를 큰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을 단풍이 우수수 떨어져나가는 가운데 휴정은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법문을 유정과 불두, 그리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당취들에게 들려주었다.

“중생이 죽어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부처가 난다. 이처럼 조선이 죽어야 비로소 사람 사는 나라가 일어날 수 있다. 조선이 망하고, 양반이 망하고, 벼슬아치가 망해야 한다, 숨막히는 계급이 망해야 한다. 그래야 화독(華毒)에서 깨어나 본래 청정심을 깨우칠 수 있다”

“큰스님, 무엇보다 승과(僧科)를 부활하여 승려를 천시하는 풍토를 없애야 합니다. 국왕을 만나 이 문제를 매듭지어 주십시오”

“전란 중에도 하지 못한 일을 전쟁이 끝난 뒤에 무슨 수로 성사시키랴. 토사구팽(兎死狗烹), 이제 승군은 쓸 데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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