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열병앓던 여인의 끝없는 몰락

2001.03.01 17:07

▲말레나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말레나’로 돌아왔다. ‘말레나’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은 한 소년의 성장영화이면서 동시에 배타적 집단주의가 득세했던 2차대전에 대한 우화이다. 주세페 감독의 음악파트너 엔리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했고, ‘라파르망’의 모니카 벨루치가 말레나로 매혹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0일 개봉.

1940년대 이탈리아 바닷가. 개구쟁이들이 서로 ‘말레나’의 속살을 봤다고 자랑이다. 라틴어 선생님의 딸 말레나는 뭇남성들의 우상. 그가 마을광장을 걸어가면 남자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여자들은 질투심에 쑥덕거린다. 그러나 말레나는 생존을 위해 독일군의 창녀노릇까지 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단죄한다. 단 한 사람, 그를 어릴 적부터 짝사랑해왔던 소년 레나토는 말레나 편에서 항상 그를 지켜본다.

소년 레나토가 말레나가 듣던 음악만 반복해서 듣고, 훔친 그의 속옷을 덮고 자고, 자전거로 몰래 그를 따라가고…. 레나토의 시선으로 진행된 성장영화 ‘말레나’에는 관객을 미소짓게 하는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레나토에게 말레나는 흠모하는 연인이자 더럽혀져서는 안되는 성녀이다.

이런 말레나를 집단의 광기가 마녀사냥하면서 영화 ‘말레나’의 시선은 바뀐다. 어린 레나토는 말레나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동네 사람들의 가학은 강도를 더한다. 여자들의 증오에 더러운 여자라고 욕하면서 그를 범하려는 남자들의 이율배반이 가세한다. 말레나를 마을 광장에서 머리카락이 잘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리면서 ‘이래도 네가 내 남편을 꼬드길 것이냐’고 소리지르는 여자들의 모습은 집단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우화적 기법을 사용한 ‘말레나’에는 ‘시네마 천국’에서와 같은 삶의 전반을 꿰뚫는 통찰은 약한 편이다. 그러나 주세페 감독의 특기인 인생의 유머와 향수를 녹여내는 솜씨는 여전하다. 토토가 영사기로 보면서 인생과 꿈을 배웠다면 레나토는 말레나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간 것이다.

모델 출신인 모니카 벨루치는 이자벨 아자니의 청순한 매력에 육감적인 이탈리아 여성의 이미지까지 겸비했다.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한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는 “소피아 로렌 같은 이탈리아 고전 여성성의 상징으로 남고 싶다”는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오는 아카데미상 촬영·음악상 후보에 올라가 있다.

/유미기자 jami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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