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NMD입장 공표 신중해야

2001.03.01 19:08

한·러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내용을 놓고 국내외 일부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성명에 언급된 “1972년 미·소간에 체결된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이 보존·강화돼야 한다”는 표현이 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로 비쳐져 한·미간에 마찰요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 NMD에 대한 공식 입장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ABM 조약 준수를 강조하는 배경이 미·러간 탄도요격미사일 숫자를 제한한 이 조약을 통해 미국의 NMD체제 구축을 저지하려는 것임은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맹방이라는 한국이 이 문제를 공식 거론한 것에 대해 속으로 불쾌했을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한·러 공동성명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게 된 배경과 진의를 미국측에 설명하자 미국은 이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 미 국무부는 공동성명이 NMD에 대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반대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뉴욕의 한반도 싱크탱크인 리언 V 시걸 사회과학연구소 고문도 “한·러 성명에 대해 미국이 불쾌해 하거나 분노하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측이 이런 마당에 국내에서 “러시아에 당했다”는 식으로 자해적인 해석을 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필요는 없다. 차제에 겉으로는 국익우선의 ‘자주외교’를 외치면서도 막상 조금만 갈등요소가 생기면 호들갑을 떠는 일부 국내 보수층의 시각도 교정돼야 한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NMD체제 구축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중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 각국도 반대하는 사안이다.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NMD체제가 한반도에 신냉전구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찬성하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미·러, 북·미간 갈등이 증폭되면 그간 공들여온 남북 화해·협력정책도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언제 어떤 식으로 공표할지는 외교환경을 보아가며 신중히 결정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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