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가장’의 내리사랑 유형욱

2001.04.01 17:28

“동생들이 많아요”영락없는 맏딸이었다. 생글생글 애교띤 웃음이 넘쳐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해 보였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세살 아래 남동생과 함께 사는 유형욱양(22). 이젠 ‘숙녀’가 됐지만 그간 줄곧 ‘소녀가장’으로 살아왔다.

그녀에겐 친동생 말고도 돌보는 동생들이 참 많다. ‘참빛’(www.chamvit.net)을 통해 알게 된 20여명의 동생들이다. 부모님이 ‘제 자리’에 안계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외로움과 배고픔에 익숙해진 아이들. 하지만 꿋꿋하게 집안살림을 이끌어가는 소년소녀 가장이다. 참빛은 소년소녀 가장을 가족처럼 보살펴주는 젊은이들의 후원 모임이다.

물론 그녀도 참빛 출신이다. 8년 전 참빛 초창기때부터 그곳 식구로 지내왔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3년 전부터는 도움을 주는 식구가 됐다. 참빛의 맏딸이자 아이들의 맏언니, 큰누나가 된 셈이다.

“제가 받은 게 참 많아요. 배고픔에 지치고 외로움에 떨고 있을 때 ‘살 길’을 전해준 것은 주위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받은 만큼은 갚아야 마땅하겠지요”

“사이클밖에 없어서…”중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게 별로 없었다. 아빠는 공사현장에서, 엄마는 공장에서 일하시며 비록 가난했지만 부족한 줄 몰랐다. 나중에 크면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착하고, 예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엄마 아빠의 싸움이 잦아졌다. 말다툼을 넘어선, 아빠의 ‘폭력’도 목격했다. 무서웠다. 한달 후쯤 엄마가 딱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잠깐 갔다가 올게”. 그로부터 석달동안 아빠는 열일 제쳐놓고 엄마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결국 힘없이 돌아온 아빠의 목소리. “엄마가 너희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엄마가 새살림을 차렸다는 얘길 들었다. 그후 아빠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영영 손에서 놓지 못했다.

집 나간 엄마, 일 팽개친 아빠. 집안살림은 고스란히 맏딸의 몫이 됐다. ‘먹고 살기’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학교 가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우선 학교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사이클이었다. 사이클을 타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학비를 면제해주는 유일한 특별활동부였다. 덩치는 커도 운동엔 젬병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다. 중2때부터 고교 졸업때까지 꼬박 5년간 사이클에 매달렸다. 조금이라도 뒤처져 사이클부를 쫓겨나기라도 하면 그날로 학교를 그만둬야 하기에 ‘목숨 걸고’ 달렸다. 하루에 수백㎞씩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며 눈물을 삼켰다. 엄마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 춥고 배고픈 고통을 바람 속에 날려버리고 싶었다.

고교 졸업 후 실업 사이클 선수가 되진 못했다. 입상 실적이 변변치 않아서다. 전국대회 단체전 우승 한번뿐. 개인전에선 2등이 최고 성적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수시로 고기 먹고 보약 먹는 아이들과 하루 한끼 밥도 제대로 못먹는 상태로 경쟁을 했으니.

“저같은 동생들을…”그녀는 지금 택시회사의 경리사원으로 일한다. 월급 70만원. 거기서 매달 쪼개어 참빛에 보탠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자그마한 돼지저금통을 놓아두고 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입니다’. 기사 아저씨들 월급날에는 1,000원짜리 한장쯤을 1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 넣어드린다.

퇴근 후 오후 6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는 유아용품 판매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 일을 마치면 동생들과 만나는 시간. 늘 바쁘지만 근무시간이 아니면 어김없이 동생들을 만나러 간다. 한달에 두번 일요일엔 참빛 식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노래 공연을 한다. 노래도 잘 부르는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참빛의 ‘전속가수’이기도 하다.

동생들을 만나면 과자도 사주고 거리구경도 나가고 노래방도 함께 간다. 제일 중요한 건 터놓고 얘기하기. 어렵고 힘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큰언니, 큰누나 앞에선 편안하게 털어놓는다.

“제가 겪었던 상황을 똑같이 고민하는 동생들이 많아요. 쌀이 없어서 꼬박 사흘을 굶은 아이, 한겨울에 연탄이 떨어져 1주일째 냉방에서 지낸 아이, 엄마 아빠를 지독히 원망하면서도 보고 싶어 하는 아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모자라서 늘 안타까워요. 그저 ‘나도 그랬었다’고 공감해주는 게 고작이지요. 그래도 용기를 잃지 말라곤 해요. 세상 어딘가에 가족같은 이웃들이 있다고 하지요”

그녀는 동생들 곁에 있는 게 마냥 즐겁다. 명절날에는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 함께 세배 다니고, 동생들 생일을 잊지 않고 조촐하게나마 파티를 열어주고, 때때로 소풍이나 운동회도 함께 간다. 식목일엔 다함께 산에 가서 푸른 희망의 나무를 심기로 했다. 앞으로는 ‘쿠킹 데이’도 만들어볼 작정이다. 왜 그런진 몰라도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 제맘대로 신나게 요리를 해보고 제 손으로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 날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봄기운이 기지개를 켠다. 파란 하늘, 포근한 햇살, 새록새록 피어나는 꽃망울. 밝게 웃는 그녀에게서도 봄을 봤다. 희망과 사랑이다.

▲참빛 십계명

1. 동생들 생일 파티는 화끈하게 하라

2. 동생들 운동회날엔 같이 달리기해서 1등하라

3. 동생들이 전화 안하면 “미워 미워”라고 말하라

4. 참빛 MT 기간동안 동생들을 최대한 즐겁게 하라

5. 동생들 소풍 따라가서 김밥을 빼앗아 먹어라

6. 동생들이 보고 싶을 때는 과감히 전화를 하라

7. 5월5일과 12월25일엔 동생들을 막 깨물어 주라

8. 동생들과의 비밀은 죽을 때까지 지켜라

9. 동생들과 맺은 약속은 절대로 지켜라

10. 동생들 졸업식은 참빛 경사다. 반드시 참가하라

-[취재수첩]소년소녀가장 후원회‘참빛’…어둠의 새싹들에 ‘등불’8년-

‘참빛’은 1994년 3월에 결성된 소년소녀 가장돕기 후원회다. 현재 강남대 대학원생인 백두원씨(29)가 대학시절 친구 2명과 함께 출발했다. 그 또한 ‘여유’가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다. 몸져 누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 그 어머니가 병원비를 마다하고 이웃의 고아원에 쌀을 사서 전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먹게 된 일이었다.

참빛은 매달 둘째·넷째 일요일 저녁 동두천 버스터미널 앞에서 노래공연을 한다. 8년째 거르지 않고 해왔다. ‘소년소녀 가장을 돕습니다-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젊은이들’이란 플래카드를 내걸고.

노래 공연 외에 일일찻집이나 벼룩시장을 열어서도 모금을 한다. 행사 성금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전하는 이웃의 후원금으로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있다.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가족의 치료비를 보태준다. 생일이나 입학·졸업 선물도 빠뜨리지 않으며 소풍과 운동회도 연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과 자매결연을 맺어주기도 한다.

참빛 회원들은 “참빛은 가족이다”라고 말한다. “아프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웃의 사랑을 바탕으로 형 누나 또는 아빠 엄마가 되고자 한다”고 했다. 재작년 가을 형욱양의 아버지가 수년간 알코올중독 병치레 끝에 돌아가셨을 때 곁을 지킨 것도 참빛 식구들이었다.

참빛은 매달 1,000원의 사랑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줄 수 있는, 가진 것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인 이웃들의 정성을.

/동두천/차준철기자 cheol@kyunghyang.com/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