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비웃다’“난 유색인종” 마이크 박

2001.11.01 17:20

지난주말 서울 을지로 트라이포트홀 ‘펑크록 쇼’ 무대.

이름부터 톡특한 미국의 4인조 펑크그룹 ‘브루스 리 밴드’가 무대를 뒤흔들었다. 신명나는 스카펑크를 구사하면서 그들이 노래를 부르자 관객들은 연호했다.

‘안녕하세요/한국말 못해/우리가 아버지/우리가 어머니/괜찮아 왜 그래/아아 아아아야야/할머니 좋았다/애기야 미웠다/괜찮아 왜그래’-‘Onyonghasayo’ 중에서.

해독 불가능한 한국어로 노래하면서 무대를 휘젓는 생소한 외인부대. 날카롭게 세운 머리, 찢어진 가죽재킷이 우리가 아는 펑크그룹의 의상 컨셉트. 그러나 이들은 태극마크가 새겨진 티셔츠에 면바지가 전부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매너로 관객을 휘어잡은 ‘브루스 리 밴드’의 중심에 한국인 2세이자 팀리더인 마이크 박(32·색소폰)이 있다.

187㎝의 키에 90㎏의 육중한 체구. 미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디레이블 ‘아시안 맨 레코드’의 대표이자 그룹 ‘브루스 리 밴드’와 ‘칭키스’의 리더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지역은 물론 유럽과 멕시코, 일본 등으로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소수인종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인권운동가다.

“저는 내 나라 코리아를 사랑합니다. 자라면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노래를 통해 유색인종으로 백인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더 이상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도록 힘쓰고 있어요”

인간을 위한, 환경을 위한 펑크정신을 앞세워 미국 인디레이블의 선두주자로 우뚝선 마이크 박. 그는 1969년 어머니가 출산을 위해 귀국, 서울에서 태어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라는 백인 밀집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학교에는 동양인이 단 3명뿐. 백인친구들이 ‘브루스 리’ 흉내를 내면서 그를 놀렸다. 덕분에 이소룡 영화를 수차례나 봤다. 태권도도 배우고, 쌍절곤도 돌렸다. 브루스 리와 같은 동양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피아노, 기타, 색소폰을 섭렵했다. 13세때 그룹을 결성했다. 1989년 스무살 나이에 인디밴드 ‘Skankin Pickles’의 리더가 되면서 프로무대에 나섰다.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새너제이 주립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매니저도 없었고 레코드사도 없었죠. 직접 제작한 앨범을 싣고 전세계를 누볐어요. 매년 200회 이상 무대에 섰습니다. TV나 라디오 홍보 없이 라이브투어만으로 15만장의 앨범을 팔았죠”

투어버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단지 음악만을 위해 뛰었다. 공연장 앞자리에 앉은 백인의 입에서 ‘병신’이라는 속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는 열심히 노래했다. 그 수입을 모아서 소수인종을 위한 인권단체에 기부했다.

“수년 전 LA 폭동때 분노를 느꼈어요. 한국인 상점이 가장 큰 피해를 봤죠.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는 교포와 같은 동양인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인디신에서 유명세를 탈 무렵인 1996년 그는 ‘아시안맨 레코드’를 설립했다. 레코드사의 마크에 한글로 ‘아시안맨’이라고 표기했고, 태극기 문양도 넣었다. 설립과 동시에 두 그룹을 결성했다. 그 하나가 ‘브루스 리 밴드’였고, 또 하나는 ‘칭키스’(중국인을 비하하는 미국식 은어)였다. 어린 시절 놀림을 당했던 그 언어를 그룹명으로 한 셈이다.

그동안 레이블을 통해 배출된 그룹은 총 28개, 앨범만도 86장을 냈다. 라이브투어와 웹사이트(www.asianmanrecords.com) 판매만으로 설립 이후 1백만장이 넘는 음반을 팔았다. 지금은 일본에 지사도 생겼다. 그가 이끄는 두 밴드는 유럽과 일본 투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그는 인기를 바탕으로 각종 잡지에서 소수인종을 위한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한다. 5년여 만에 앨범을 내겠다는 밴드가 줄을 섰고, 투자자들도 많아져서 탄탄한 레이블로 성장했다.

한때 농구선수로도 활약했고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는 마이크 박. 그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한국음식을 너무나 좋아한다면서 “조국이 부르면 어떤 무대라도 가리지 않고 노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2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는 등 개인적 고통을 겪기도 했던 마이크 박은 그가 그리워하던 한국땅에 앨범을 내놨다.

‘브루스 리 밴드’의 ‘Peace & Unity’. 앨범 구석구석 조국에 대한 사랑과 뿌리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묻어 있다. 뿌리를 부정하면서 조국을 등지고 떠나는 것이 오늘의 현실. 그 와중에 트럭같은 투어버스에 몸을 싣고 전세계를 누비면서 그 소득을 소외된 자들에게 돌려주는 한국인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취재수첩]‘크라잉 넛’이 본 ‘브루스리 밴드’-

지난달 27일과 28일 ‘펑크록 쇼’에서 ‘브루스 리 밴드’와 공연했던 ‘크라잉 넛’은 “가식이 없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수준 높은 음악을 구사하는 팀이었다”고 평했다. 특히 이들이 내세우는 ‘평화’와 ‘하나됨’의 정신을 노래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평했다. 또 마이크 박의 색소폰과 멤버들의 기타가 어우러져 구사하는 스카펑크는 “친근한 멜로디와 뛰어난 그루브감으로 금세 친숙해질 수 있는 노래였다”고 말했다. 또 마이크 박이 상업적인 마케팅 대신 발로 뛰는 마케팅을 통해 진정한 인디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받을만 하다고 얘기했다. 현재 국내에서 자메이카에 뿌리를 둔 레게에서 발전한 스카 펑크를 구사하는 팀은 ‘레이지 본’ 정도다.

/오광수기자 ok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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