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테러전쟁 ‘미국의 오만’

2001.11.01 18:58

지난달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톰 브래들리 국제공항. 경향신문 창간 55주년 특집 취재차 쿠바의 아바나를 떠난 기자가 멕시코시티를 경유해 LA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5분. 아프간에서는 민간인들이 오폭으로 죽어나가는 가운데 프로야구 월드시리즈를 즐기는 美본토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자못 긴장이 됐다. 지난달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톰 브래들리 국제공항. 경향신문 창간 55주년 특집 취재차 쿠바의 아바나를 떠난 기자가 멕시코시티를 경유해 LA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5분. 아프간에서는 민간인들이 오폭으로 죽어나가는 가운데 프로야구 월드시리즈를 즐기는 美본토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자못 긴장이 됐다.

9·11테러 이후 미국내 공항, 항만 등의 검문검색 절차가 대폭 강화된 데다 미국인의 기준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감시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됐다는 외신을 익히 접해왔던 터였다.

그나마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미국 입국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적잖이 안심이 됐다. 기자는 같은 공항에서 낮 12시30분에 이륙하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되는, 통과승객(Transit)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을 스쳐 지나가려고 했던 생각은 공항청사에 들어서면서 보기좋게 빗나갔다. 통과승객용 라운지는 간단한 폐쇄안내문과 함께 굳게 잠겨 있었다. 공항직원에게 물으니 입국심사장으로 가라는 퉁명스런 대답만이 돌아왔다. ‘전쟁’은 많은 편리함을 앗아갔다.

여행객이 줄었다고 해도 LA공항은 명실공히 미국 서부 최대 관문. 입국장에 들어서니 꼬불꼬불 늘어선 장사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다음 비행기 탑승까지 기자는 세관·입국·검역(CIQ) 절차를 꼬박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권에 미국비자가 있는 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1시간여 동안 줄을 선 뒤 맞닥뜨린 입국심사관은 입국신고서 양식이 잘못됐다며 퇴짜를 놨다. 비자가 있는 방문객은 정식 입국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모든 게 ‘테러 때문에…’라는 말로 정당화됐다. 수화물에 대한 X레이 투시와 간단한 검역질문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다시 40여분이 지난 뒤였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어 역순으로 출국절차를 받아야 했다. 이미 이날 오전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출국절차를 거친 기자는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존 애시크로포트 미 법무장관은 지난달 31일 테러조직과 연계된 외국인들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해 검문·검색을 더욱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테러에 참가 또는 지원했거나, 의심되는 외국인의 입국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테러 의심분자’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데 있다. 이미 콧털깎는 소형가위나 포크도 ‘테러 의심 흉기’로 의심받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평범한 여행객이 테러 용의자로 의심받는 경우가 속출할 것은 불문가지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9월말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 항공업계에 1백50억달러의 특별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행객들에게 불편을 강요하면서 집행될 지원금이 과연 미국 항공업계를 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보였다.

〈로스앤젤레스/김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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