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워보니]온몸으로 치르는 ‘이유식 전쟁’

2003.02.02 16:03

이유(離乳)는 전쟁이다. 이렇게 도입부에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어쩌다 한번 참여해 목격한 이유식 먹이기가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기 때문이다. 이유식을 먹이고 나면 주변 반경 1m 이내가 질척질척해진다. 신우 엄마와 신우가 엉망진창으로 변하고 만다.

신우의 몸무게는 대략 9㎏. 신우 엄마는 9㎏을 감당하느라 팔목에 노상 파스를 붙이고 산다. 이유할 때는 몸무게만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라 신우의 손을 제압해야 한다. 이유식을 먹으면서 신우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인다. 잡는 데 재미를 붙인 요즘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면 이유식을 받아넘기곤 곧바로 낚아챈다. 손 힘이 제법 세다. 숟가락을 빼앗으려는 엄마와 신우 간 힘겨루기가 진행된다.

그러다 보면 숟가락에 남아 있던 음식물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두 사람이 입은 옷에 음식물이 흠뻑 튀게 된다. 당근같이 색깔있는 재료가 섞인 이유식을 먹인 날엔 옷에 알록달록 얼룩이 생긴다.

신우는 아직 씹는 데 익숙하지 않다. 젖병을 보면 제 밥이라는 걸 알고 흥분한다. 신우에겐 ‘식사=빠는것’인 셈이다. 이유식도 좋아하지만 반응이 다르다. 숟가락으로 떠넣어주고 이유자가 앞에서 오물오물하면서 씹는 흉내를 내준다. 하지만 녀석은 빨 게 필요하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손가락을 입으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빤다. 젖병 꼭지처럼 음식물을 목으로 넘기기 위해선 ‘돌출한 빨 것’이 필수인 모양이다.

그러니 양손이 모두 음식범벅일 수밖에. 곧 팔로 흘러내리기까지 한다. 손바닥으로 무엇이든 팍팍 내려치는 게 요즘 신우의 취미생활. 음식물은 신우 팔에만 머물지 않고 장판에도 엉겨붙게 된다.

아기용 식탁의자를 장만하면서 사정이 다소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유가 끝나면 탁자 위, 주변이 모두 끈적거리는 건 마찬가지다. 신우 얼굴은 3분의 2가량이 음식물로 덮여있다. 얼굴에 하도 칠하기를 좋아해서 군대를 특수부대로 가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다. 옷을 갈아 입어야 할 때도 많다. 이 일을 오전·오후에 한번씩 치른다.

대부분의 아빠들에게 이유란 ‘젖을 먹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밥을 먹는 것’ 정도가 아닐까. 나만 해도 어쩌다 ‘참관’한 것이지, 난장판을 헤쳐나가는 주역은 엄마다. 나중에 지금 아빠들과는 다른 세대일 신우가 제 아이를 키우면서 새삼 엄마에게 감사를 드릴 터. 그때까지 이유에서 빠져있는 아빠들이 최소한 감사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얘기로, “지난번 ‘아이를 키워보니’를 읽고 현재 키우는 애견 때문에 출산을 미루고 있다”는 독자편지가 있었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변명삼아 한 마디 더. 신우에게 밀려난 돌쇠는 지금 훨씬 풍족하게 살고 있음을 밝힌다.

/안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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