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을]차츰차츰 따뜻해지며

2003.02.02 16:13

/이구락 (시인·대륜고 교사)/

눈보라 이따금 창을 흔들고

그때마다 조개탄 난로

더욱 발갛게 달아올랐다

옷깃 세우고 개찰구 벗어나도

기다리는 열차는 더디게 왔다

철길 끝 멀리 키 낮아진 겨울산

눈에 덮여 오랜 옛집처럼 엎드려 있고

문득, 두고 온 겨울바다 허기꽃 떠올리며

소금기 밴 안경 다시 닦았다

125열차 9호 45번 좌석

자리 찾아 앉으니,

무릎 닿는 소녀

까칠한 손가락 길이 만한 쓸쓸함

설핏 창가에 어려 흔들렸다

대합실 모래재떨이에 꽂힌 꽁초처럼 앉아

눈감고 흔들리고, 따라온 파도에 흔들렸다

차츰차츰 따뜻해지며,

가물거리는 의식의 저편

아득히 손 흔드는 두고 온 남쪽

목마름 같은 섬들이 떠올랐다

-시집 ‘그 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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