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 오솔길]한자 알아야 우리 말글이 보인다

2003.02.02 18:40

어떤 결심을 단단히 하는 문맥에서 ‘무릅쓰거나 각오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강조하며 이르는 말’로 ‘산수갑산’을 쓰는 이들이 많다. “내일 산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은 쉬어야겠다” 따위가 그 예이다. 이처럼 ‘산수갑산’이란 말이 널리 쓰이는 것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산 넘고 물 건너 죽을 고생하며 이곳까지 왔다” 등의 표현에서 보듯 우리 생활에서 산(山)과 물(水)은 곧잘 고생을 나타낸다. ‘산과 물=고생’이란 생각이 뇌리에 박혀 별 의심없이 ‘산수갑산’을 바른말로 알고 쓰는 것이다.

그러나 ‘산수갑산’은 ‘삼수갑산’으로 써야 하는 말이다. 여기서 ‘삼수’와 ‘갑산’은 함경남도의 땅 이름이다. 조선시대 귀양지 중 하나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척박한 곳이다.

‘삼수갑산’을 ‘산수갑산’으로 잘못 쓰는 것은 한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三水甲山’을 안다면 이를 ‘산수갑산’으로 적지는 않을 것 아닌가. 우리말은 한자말이 7할이고, 순우리말은 3할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한자를 모르고서는 우리말을 바르게 쓸 수 없다.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 한자의 뜻을 몰라 잘못 쓰는 말이 부지기수다. 미인대회 관련 기사에서 열에 아홉은 “○○에서 열린 ○○미인 경연대회…”처럼 ‘경연대회’라는 낱말을 쓰는데, 이때의 ‘경연대회’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경연(競演)’은 ‘예술·기능 따위의 재주를 겨루는 것’을 뜻한다. 수영복과 한복을 입는 데 예술적 행동이 따르고, 특별한 기술적 재능을 살려 예쁘게 웃는 것이 아니라면 ‘경연’이 될 수 없다. ‘서로 아름다움을 겨루는 것’은 ‘경염(競艶)’이다. ‘艶’은 ‘고울 염’ ‘예쁠 염’으로, ‘경염’은 말 그대로 ‘예쁨을 겨루는 일’이다.

누구를 비방하거나 깎아내림을 뜻할 때 쓰는 ‘폄하(貶下)하다’도 ‘폄(貶)하다’나 ‘폄훼(貶毁)하다’가 제 뜻에 맞는 말이다. ‘폄하(貶下)’는 ‘벼슬을 낮추는 일’이다. ‘풍지박살’이나 ‘풍지박산’으로 쓰는 말도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바른말이다. ‘風飛雹散’은 말 그대로 ‘우박(雹)이 바람(風)에 날려(飛) 흩어짐(散)’을 뜻한다.

또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을 뜻하는 말로 ‘홀홀단신’을 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홀홀단신’은 우습기 짝이 없는 말이다. ‘단신(單身)’은 ‘혼자의 몸’을 뜻하는 한자말이지만, ‘홀홀’은 ‘짝이 없음’ ‘하나뿐임’을 뜻하는 우리말 접두어 ‘홀’을 겹쳐 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접두어를 겹쳐 쓰는 일도 없거니와 ‘홀홀단신’의 글꼴이 마치 불구의 몸처럼 보인다. ‘홀홀단신’은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써야 한다. 이때의 ‘孑孑’은 ‘외로운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孑’은 ‘외로울 혈’자다.

〈엄민용 굿데이 교열팀장 margeul@h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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