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모국어는 통한다’

2003.04.01 16:15

-외국인 노동자들 위한‘구로 한국어교실’-

서울 구로구 성문교회 4층. 5평 남짓 작은 방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한국어 교실이 열린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노동자 4명과 자원봉사자인 교사 7명. 숫자는 적어도 열기는 후끈하다.

구로 한국어교실(guroko.cyworld.com).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부터 한국어를 가르쳐온 직장인 허근석씨(27) 등이 구로에 터를 잡고 2000년 문을 열었다. 지난해부터 이화여대 한국어 나눔회에서 ‘뽑혀온’ 학생 선생님들이 가세했다. 근처 외국인 노동자 쉼터에 머리 깎으러 왔다가,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다가, 학생이 된 외국인들이 자리를 채웠다. 학생들은 30·40대, 교사들은 20대. 나이어린 교사들이지만 학생들은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부르며 믿고 따른다.

이곳 ‘학생’들의 한국생활은 대부분 2년째 접어든다. 듣기는 우수하지만 말하기와 쓰기는 서투르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프랭크는 인천의 ‘요리공장’에서 일한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유리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문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모범생’인 중국인 팡순자오는 ‘봄이니까’와 ‘봄이어서’의 차이를 물어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든다. 국문학을 전공한 김진경씨(22)는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올까 괜히 불안하다. 중국인 담당 조성진씨(29)는 산둥 출신의 리민쥔에게 중국 고사성어를 배우기도 한다. 수업은 1대 1로 이루어진다. 교재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각 대학에서 출판한 한국어 교재를 쓰기도 하고, ‘집중 발음클리닉’을 열기도 한다.

최재희씨(20)는 수업중 갑자기 허리 치수를 물어온 리취엔먼 학생 탓에 적잖이 당황했다. 1주일 후, 리취엔먼은 자신이 일하는 의류공장에서 만들었다며 청바지 한벌을 선물했다. 일자리가 바뀌어 한국어교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 중국학생은 멋들어진 붓글씨로 서예 작품을 선사했다. 중국집에서 일하는 학생이 수업시간에 슬그머니 꺼내놓은 음식꾸러미, 시험기간이라 수업을 빠졌을 때 휴대폰에 뜬 ‘시험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문자메시지…, 그런 것들은 선생님을 행복하게 한다.

요즘 구로 한국어교실 가족들은 걱정이 많다. 지난 2월 불법체류자 단속 파동 뒤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교사가 학생보다 많은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꾸만 비어가는 교실. ‘벚꽃놀이’ 단원을 가르치지만 벚꽃놀이를 갈 시간도 돈도 부족한 학생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조성진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외국어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열의 하나면 충분합니다. 빈손으로 오시진 말고, 오는 길에 만난 외국인 노동자 한분 손 붙들고 함께 와 주십시오”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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