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시대에 진정한 사람 그렸죠”

2003.09.01 16:28

◇MBC ‘다모’ 작가 정형수씨

MBC 월화드라마 ‘조선 여형사 다모’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총 14회 가운데 10회를 마친 2일 현재 마니아층이 형성됐고, 시청률 면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데에는 정형수 작가(34·사진)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채옥(하지원)은 황보윤(이서진)에 대한 사랑을 누르고 또 누르면서 속을 태웠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다모’에 뛰어든 지난 18개월 동안 그가 드라마 속 인물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을 쓸 때는 코끝부터 매웠습니다. 불쌍해서 제 자신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죠. 인물들이 하나씩 숨을 거둘 때는 내 형제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인스턴트 시대에 진정한 사람 그렸죠”

네티즌 ‘구명운동’속 비극적 결말 암시

그는 “누구보다도 정말 주인공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면서도 “그러나 황보윤의 성공을 위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채옥, 비록 역모를 꾀했지만 채옥의 오빠인 장성백을 벨 수 없는 황보윤의 입장 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었다”고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했다.

정작가는 ‘내 가슴을 뚫는 사랑’이라는 드라마의 광고문구대로 어렵게 사랑을 이어간 황보윤과 채옥의 이야기가 ‘다모’의 흡인력이었다고 분석했다. 채옥이 황보윤을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황보윤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원작(무협만화 ‘다모’)의 설정을 바꾼 그는 이들의 사랑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당장 붙잡아서 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이 이 작품의 메시지예요. 인스턴트 식품 같은 사랑을 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정작가는 장성백에 대한 채옥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황보윤과 채옥 간의 감정은 ‘정’이라는 말로 무게감을 줬다. 15년이라는 세월이 묻어나는 황보윤과 채옥의 ‘정’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깊은 무엇이라면, 성백과의 열정은 순간적인 감정의 분출이라는 얘기다.

“사랑도 의리라고 생각한다”는 정작가는 “열정은 식더라도 그 기억들이 사랑을 계속 이어가게 한다”면서 ‘진정성’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그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등의 대사가 화제가 되고 네티즌이 주인공들의 어록을 만들 정도로 환호하는 ‘다모’ 대사의 매력을 진정성에서 찾았다.

“미사여구로 채색하거나 특별히 압축해서 전달하기보다는 항상 인물과 상황에 맞는 적확한 말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거친 진정성이 가슴을 치는 경우가 많죠. ‘아프냐’라는 대사는 상황에 맞게 해야 할 말만 하는 황보윤의 성격에서 나온 말이지요”

원작 재창조한 연출과 연기에 대만족

대본을 쓸 때 울기도 많이 울었던 정작가는 TV를 보면서 또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자신이 쓴 드라마가 PD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덧칠되면서 재창조됐기 때문이다. 그는 “황보윤은 원작에서는 사랑과 야망을 동시에 지닌 현실적인 캐릭터였다”며 “드라마화되면서 사랑과 정의에 목숨을 거는 어쩌면 더 만화적인 인물로 만들어졌는데, 이서진씨가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 속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장성백을 멋드러지게 보여준 김민준에게도 대만족”이라면서 본인이 만든 캐릭터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웨이브 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민준씨의 연기와 표현은 완벽했지만 대본상에 혁명가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냉정해야 하는 점이 부족했다”며 “낭만적 혁명가라는 비판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정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 1999년 MBC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를 통해 입문, 지난해 ‘상도’의 후반부(41~50회) 집필을 맡으면서 주목받았다.

〈정재욱기자〉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