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絃에선 가을이 묻어난다

2003.09.01 16:54

‘2003 호암 뮤직 알프 페스티벌’음악감독으로 내한 강동석

수줍음 타는 그의 맑은 얼굴에선 나이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무대 위의 그에게선 ‘연주생활 45년’의 무게가 느껴진다. 자신을 던져 음표 하나하나를 표현하는 열정, 땀에 푹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에선 음악이 펄펄 살아있다. 현(絃)의 귀공자, 바이올린의 시인(詩人) 강동석씨(49)가 서울에 왔다. 1983년 9월 고국 데뷔무대를 가진 지 20년째 되는 해에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실내악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뜻깊은 무대를 만든다.

그의 絃에선 가을이 묻어난다

# 음악감독의 희망

그는 ‘2003 호암 뮤직 알프 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내한했다. 프랑스 쿠쉐빌 뮤직 알프 페스티벌 음악감독으로 활동중인 강동석씨가 쿠쉐빌 페스티벌에서 자신과 음악적 교류를 나눠온 교수 등 16명을 정예부대로 택했다.

“한국에서 음악캠프는 더러 열리지만 이처럼 본격적으로 국제규모의 실내악 축제가 마련되기는 처음입니다. 5년째 열리는 뮤직 알프 페스티벌에선 20년 지기인 파스칼 드봐이용과 공동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데, 지난해는 20여개국에서 800여명의 학생과 70명의 교수들이 참가했죠”

강동석씨는 뮤직 알프 음악감독으로서 교수 섭외, 레퍼토리 선정, 참가자 신청, 연주작업 등 음악관련 업무는 물론 행정적인 일도 맡아 한다. “나이들수록 혼자하는 연주보다 함께 어울리는 실내악이 좋아집니다. 솔로보다 책임감은 더하지만 레퍼토리가 다양하고 다른 이의 삶도 진하게 느끼고…”. 나눔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린 것이다.

# 음악신동의 아픔

다섯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8세에 첫 연주회를 통해 ‘음악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은 그는 청계초등학교 5학년(1964년)때 제13회 이화·경향 음악콩쿠르 대상을 받았고, 대광중 2학년(67년)때 미국 유학을 떠났다. 줄리아드 음악원과 커티스 음대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하며 음악과 인생을 배웠다. 17세에는 케네디센터에서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협연하며 미국 무대에 데뷔했고, 19세에 유럽에 진출했다. 20대에 몬트리올, 칼 플레시, 퀸 엘리자베스 등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를 석권하고, 80년대 초반 파리에 정착하면서 프로연주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평론가들로부터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천부적 재능과 완벽한 음악을 창조하려는 치열한 예술혼을 지닌 인물”이라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동안(童顔)의 미소년 같은 그에게도 기쁨만 있었던 건 아니다. 16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던 그는 ‘병역’이라는 짐을 지고 살았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주가들에 대한 병역특혜가 없던 당시 병역기피자로 분류됐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시민권도 받지 못한 그는 영주권을 가진 이들에게 주는 증서를 지참하고 연주여행을 다녀야 했다. 시민권과 병역문제로 광복 30주년 기념음악회(75년) 등 예정된 연주회에 참가할 수 없었고, 82년 부친이 작고했을 때 고국을 찾지 못하는 비운도 맛보았다. 물론 그해 미국 시민권을 얻어 병역의무가 소멸되자 83년 귀국연주에 앞서 용인에 잠든 부친을 찾아뵐 수 있었다. 그의 연주에 목말라 있던 고국팬들은 83년 9월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강동석 귀국연주회로 몰려갔다. 브루흐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에 취한 4,000여명의 청중은 광란의 박수를 보냈다.

연주가라면 누구가 그럴테지만 강씨는 유독 레퍼토리 확보에 욕심이 많다. 94년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한국 초연했고, 97년 서울에서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을 아시아 초연했으며, 2001년 영국에서 BBC방송이 위촉한 앨런 호디노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미스트랄’을 초연하는 등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또 독주곡에 이어 실내악곡 공부에도 열심이다.

술도, 커피도, 담배도 안하는 그는 바이올린을 위해 사는 것 같다. 프랑스 보퀸사의 세계음악사전인 ‘연주가사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발행한 ‘세계음악인명사전’ 등에 그의 이름이 올랐고, 프랑스 백과사전 ‘키드’는 한국의 5대 음악가 (윤이상·백건우·정경화·정명훈·강동석)로 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연주가로 성공한 삶. 가정에선 프랑스인 아내 마르틴 슈트헤른(51·크렛데이음악원 피아노과 교수)과 아들 나일(19·영화전공), 딸 인아(17)를 돌보는 가장. 2000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초빙돼 1년에 두달 정도 서울 옥수동에 마련한 아파트에 머물고 나머지 기간에는 5년 전 구입한 바이올린 ‘오모보너 스트라디바리’로 연 50~60회의 연주회를 갖는 연주벌레이다.

오는 10월에는 간염퇴치 명예대사인 강동석씨가 지난 2000년부터 매년 한번씩 마련해온 ‘간염퇴치를 위한 희망콘서트’를 서울(15일), 광주, 대구 등에서 마련한다.

# 음악세계

강씨는 한국 학생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자세부터 배우라고 권했다. “한국 학생들은 급한 마음에 눈앞에 보이는 음악콩쿠르 입상과 대학입시 때문에 어려운 작품을 선호하지만 주입식으로 배운 테크닉이기에 획일적인 느낌입니다. 테크닉만 좋으면 뭐 합니까. 쉬운 곡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실어 해석하는 게 중요한데,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자립심이 부족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는 기본에 충실할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20·30대에 인생을 배워가면서 성숙해져야만 무르익은 연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기본기가 없는 기교 위주의 연주는 얼마 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연주자는 배우입니다. 자신이 연주하는 곡의 작곡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작곡가의 개성을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배우가 돼야 합니다”. 삶과 인간을 뜨겁게 보듬고 난 후 바이올린을 껴안아야만 진솔하게 청중을 위로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프랑스 쿠쉐빌의 음악축제 처음으로 서울로 옮겨와-

‘2003 호암 뮤직 알프 페스티벌’

3~7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2003 호암 뮤직 알프 페스티벌’은 프랑스 쿠쉐빌에서 해마다 7∼8월에 펼쳐지는 ‘뮤직 알프 페스티벌’을 9월의 서울로 옮겨온 음악축제다. 쿠쉐빌은 알프스 산맥이 지나는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세계 음악도들이 몰려드는 이곳 페스티벌은 한국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옹이 공동으로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교수진은 16명.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옹(독일 베를린음대 교수) 신수정(서울대 음대 교수) 김대진(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김영호(연세대 음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미하엘라 마틴(미켈란젤로 4중주단) 강동석 박재홍 조성연 김경아, 첼리스트 필립 뮐러(파리 콘서바토리 교수) 프란스 헬머슨(독일 쾰른음대 교수) 조영창(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 교수) 양성원(음악원 교수), 비올리스트 부코 이마이(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 교수) 김상진(숙명여대 교수), 클라리네티스트 찰스 나이딕(미국 줄리아드대 교수) 등 쟁쟁하다.

한국에선 첫 행사인 만큼 주제도 신중하게 정했다. ‘Cellissimo!’다. 실내악에서 조연으로 여겨지기 쉬운 첼로의 다양한 음색과 매력을 십분 보여주겠다는 의도이다. 참가자들 중에 세계무대에서 잘 알려진 첼리스트들이 포함된 배경도 그 때문이다. 페스티벌은 ‘메인 콘서트’ ‘프리 콘서트 토크’ ‘미니 리사이틀’ ‘매스터 클래스’ ‘악기 전시’ ‘애프터 파티’ 등 국내에서 접하지 못한 프로그램을 포함해 6개 부분으로 이뤄졌다.

메인 콘서트는 축제기간 내내 저녁에 열리는데, 러시안(3일)·브람스(4일)·프렌치(5일)·포프리(6일)·독일(7일) 등 매일 공연 주제를 달리 한다. 프리 콘서트 토크는 메인 공연 15분 전 호암아트홀 로비에서 음악평론가가 그날의 연주에 대한 상식, 연주곡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설명하는 자리. 미니 리사이틀은 메인 공연 2시간 전 참가 연주자들이 솔로나 이중주를 연주하는 무대다. 1544-1555

〈글 유인화·사진 박민규기자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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