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가 만난 사람]다일공동체 ‘밥퍼’목사 최일도

2003.12.01 18:11

‘밥퍼목사’ 최일도 목사(48)의 가장 큰 슬픔은 ‘어머니와 아내가 고통스러워할 때’였다.

어머니는 “무의탁 노인에게 봉사하면서도 정작 친어머니는 돌보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셨다. 아내는 결혼 5년만에 이혼하자고 했다.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버림받은 목사님은 하나님한테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무작정 용문산을 찾았다. 울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흘간이나 그곳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용문산 계곡 저편에서 구수한 밥냄새가 피어나왔다. 울다 지쳐버린 최목사는 그 냄새에 심한 허기를 느꼈다. 체면불구하고 텐트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밥을 짓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거리를 떠도는 영락없는 걸인이었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최목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이봐, 청량리에 가봐. 거기 최일도라는 목사가 자네 같은 사람에게 공짜로 밥을 나눠준대. 거기서 밥얻어 먹고 제대로 살아.”

▲윤석화=1995년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란 에세이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밥퍼’목사로 유명해지셨습니다. ‘밥퍼’목사라 불릴 때 어떠십니까?

▲최일도 목사=평생 듣고 싶은 말입니다. 이 땅에 밥굶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저는 계속 밥을 푸겠습니다.

▲윤=‘밥퍼’ 정신은 목사님이 이끄는 다일공동체의 정신이 됐습니다. 도시빈민을 위한 목사가 되신 배경을 말씀해주시지요.

▲최=1988년 신학대학원(장신대)을 졸업하고 독일유학을 준비중이었어요. 당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를 기치로 온나라가 들떠 있었는데, 청량리역을 지나다 나흘을 굶은 채 거리에 방치된 함경도 출신 할아버지를 본 순간 제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그분께 설렁탕을 사드렸어요. 없는 살림에 돈이 금세 없어질밖에요. 결국 등산용 코헤르와 버너를 가지고 청량리역으로 갔습니다. 라면을 끓여드렸는데, 밥준다는 소문이 나자 할아버지같은 분들이 금방 40여명으로 늘어나더군요. 그중 네 분은 제 품 속에서 돌아가셨어요. 굶어죽는 이가 1년에 서울근교에만 1,0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기가 막히더군요. 그때부터 15년동안 청량리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윤=목사가 되셔야 했나요?

▲최=주일학교에서 ‘나는~ 나는~ 될 터이다’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죠. 저는 ‘‘대통령이 될 터이다’’라고 노래했는데, 선생님은 저에게 목사가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아버지는 방직회사 사장이셨는데, 47살의 나이로 돌아가신 후 1남2녀중 막내인 저는 15살의 가장이 되어 자전거로 달걀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솔직히 가정을 가진 목사보다는 독신사제가 되고 싶었는데, 훗날 어머니께서 전도사가 되셔서 저도 자연스레 목사가 됐죠.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좋아하는 시(詩)를 쓰며 살았겠지요.

▲윤=문학적인 소질이 많으셨기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을 내셨겠죠. 이번에 내신 ‘마음열기’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최=매일 시편으로 마감기도를 해왔습니다. 사실 어떤 때는 아름다운 구절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마음열기’는 32편의 시편을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기 위해 쓴 책입니다. 저는 구약의 다윗과 신약의 베드로를 사랑하는데, 이번에 시편중 다윗의 노래를 제 삶에 적용했고 다음에는 베드로를 쓸 예정입니다.

▲윤=다윗과 베드로야말로 다일공동체의 주춧돌이 된 셈이군요. 다일공동체 15년째를 맞아 다일공동체 정신을 알려주시지요.

▲최=청량리에서 걸식노인과의 만남 이후 서울 청량리, 속칭 588일대에 다일교회와 다일공동체를 세운 건 89년이었습니다. 당시 인근 쌍굴다리에서 200여명에게 매일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주었죠. 다일정신은 물질주의 이기주의의 홍수 속에서 성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남겨준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섬김과 나눔’을 실천했는데, ‘다일’은 ‘다양성의 일치·일치 속의 다양성’을 뜻하는 만큼 다일교회, 다일공동체, 천사병원, 다일평화인권연구소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섬기길 원했습니다.

▲윤=다일공동체에서 그렇게 지은 천사병원이 지난 10월 개원 1주년을 맞았습니다. 병원의 의미에 대해 짚어주시죠.

▲최=기독교 최초의 무료진료 병원입니다. 병원건립도, 운영도 기적 그 자체이지요. 93년 청량리 윤락여성들과 포주들이 모은 돈 47만5천원을 가져와 ‘제발 우리곁을 떠나지 마세요. 병원을 지어주세요’라고 울면서 부탁하는 겁니다. 저도 그토록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습니다. 병원정신인 ‘더불어 함께’는 바로 그들의 마음에서 비롯됐지요. 천사병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낸 5억원의 기부금중 1백만원만 받은 것도 ‘더불어 함께’ 정신 때문입니다. 한 덩어리의 큰 돈보다 작은 돈이 모여 큰 덩어리를 이루는 정신이 바로 ‘더불어 함께’이니까요. 그리고 노동으로 정당하게 번 돈도 아니니 더욱 김현철씨의 기부금 전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윤=주위에서 ‘돈을 가려 받는다’는 오해도 있었겠습니다.

▲최=‘최일도가 배가 불렀다’ ‘최일도가 진정 죄인의 친구인가’ 등 욕도 많이 먹고 오해도 많이 샀죠. 사실 그동안 재벌들이 천사병원에 기부하겠다는 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병원 두, 세개는 더 지었을 겁니다. 그러나 더디고 작은 걸음으로 더불어 함께 가야하기에 수천만원, 수억원을 거절했고 눈물과 땀과 정성이 배인 돈만 받았습니다.

▲윤=지난 15년동안 다일정신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다시 89년 20평도 안되는 인쇄소 창고의 다일교회로 돌아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15년동안 받아본 질문 중 가장 가슴 뛰는 질문입니다. 제 책상에는 ‘처음처럼’ 살기 위해 88년 청량리에서 처음으로 라면을 끓였던 냄비가 놓여있습니다. 20평 창고시절로 다시 가고 싶습니다. 그땐 제 입에서 단 한번도 원망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일공동체를 그만두라고 집단구타를 당했지만 그건 장애가 되지 않았죠. 그때의 절실했던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윤=요즘은 어떤 분들을 돕고 계십니까?

▲최=2000년부터 중국 훈춘에서 조선족을 위한 다일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선족과 북한 동포에게 밥을 퍼주어야지요. 또 베트남에 갔을 때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1달러만 달라’고 저에게 우르르 몰려드는 거예요. 그때 ‘이젠 제3세계에서 밥을 퍼야겠다’ 싶어 2001년 베트남에 다일공동체를 세웠고 지난 11월30일에는 캄보디아 다일공동체 개설을 위해 교회사목팀이 현지로 떠났습니다.

▲윤=그렇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사모님처럼 숨어서 내조하시는 분이 있어서일 겁니다. 두 분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세요.

▲최=제가 신부되려고 수도원엘 찾아가니 김 아네스 수녀가 저에게 ‘목사든 신부든, 당신이 남은 시간에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런 상황에선 ‘신부가 되라’고 조언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리고 아내가 78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연수 시인인 줄 모르고 ‘김연수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답니다. 아네스 수녀는 저에게 ‘그리움’이란 시를 주었고, 저도 그에게 같은 제목의 시를 주었지요. 우연의 일치였어요. 그러면서 서로의 마음은 가까워졌고. 그때 제가 24살, 아네스 수녀는 29살이었습니다. 막상 아네스 수녀가 수도원을 나오자 저는 도망치고 싶었어요. 결혼요? 27살에 했지요. 집사람이 저보고 결혼하자고 했답니다(웃음). 저희 부부는 결혼 30년 후 각각 독신으로 살려고 생각합니다. 1남2녀의 막내딸인 별(8)이가 크면 집사람은 다시 수녀처럼, 저는 제가 꿈꾸던 독신사제의 모습으로 공동체생활을 하려 합니다. 현재 다일공동체 내에 개신교 최초의 남성 수도회와 여성 자매회가 내년 출범을 앞두고 있는데, 두 명의 남성과 5명의 여성이 독신수도 생활을 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윤=성탄을 앞두고 사랑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최=사랑은 깊이, 넓이, 순수성, 지속성, 표현 등 다섯 가지 조건이 함께 해야 이뤄지는 것입니다.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수고하는 것입니다. 수고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데려간 환자 진료거부 겪고 후원등 통해 ‘천사병원’건립-

1993년 한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진료를 거부당한 최일도 목사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병원건립을 추진했다. 병원후원을 위한 천사(1004)운동을 바탕으로 8년동안 6,004명의 후원회원이 모은 50여억원으로 2002년 2월2일, 천사병원을 완공했다. 지난 1년동안 100여명이 입원했고 1만여명의 환자가 이용했다. 자원봉사 의료진은 80여명. 일반 자원봉사자도 3,000여명이 거쳐갔다. 지난 11월28일에는 천사병원돕기 진태옥 자선패션쇼도 마련되는 등 다양한 후원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천사운동은 8차(8,004명), 9차(9,004명)까지 1계좌 1백만원의 후원을 지속해 다일요양원·다일원로원·다일자연치유센터 건립과 운영에도 힘쓸 예정이다. (02)2213-8004

〈정리 유인화기자 rhew@kyunghyang.com〉

〈사진 서성일기자 centing@kyunghyang.com〉

-밝게 웃으며 사랑을 긷는 이-

그는 언제나 부지런하다. 그 부지런으로 쌓여있을 고단을 훔쳐본다. 그래도 그는 웃고 있다. 맑게 웃고 있다. 그리고 벌써…한마디. 한 걸음이 앞서가고 있다. 그는 보조개가 파일 정도의 맑고 큰 웃음으로 얘기했다. “사랑은 수고입니다.” 그렇게 수고하는 그의 사랑을 흠모하면서, 어느 연속극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읊조리던 주인공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 사람은 우물같아.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그리고 그의 책 ‘마음열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응답’이라는 구절이 오버랩된다. “하나님의 우물은 맑고도 깊습니다. 다만 물을 길어올리는 두레박이 작고 더러울 뿐입니다.”

마음의 문을 다시 열고 고요하게 자신을 낮추고 기도를 한다. “작더라도 초라하지 않을 두레박이 되고 싶습니다. 점.. 점.. 쓰이다보니 큰 두레박이 되어 맑고 깊은 우물 그 심연을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나누게 하소서.”

/윤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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