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해저 삼만리

2004.03.01 16:20

/송태옥/

내 컴퓨터의 산호초 숲에서는

하루종일 파도소리가 난다

파도소리를 종일 듣노라면 진로상담실도

바닷속 산호초 숲 같아진다

산호초 숲에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바닷속 산호처럼 보인다

파도에 쓸려 모래사장에 버려진 산호,

꺾이고 상처난 산호들,

그들에게 상담실의 고요하고

잔잔한 파도소리를 들려준다

새살이 돋아나도록 아픔을 싸매주고 감싸준다

가끔 열대어들이 화면보호기 속에서

꼬리를 흔들고 가는 진로상담실

해저 저 깊은 곳의 고요한 파도소리를 따라

내가 키운 산호초 꽃이

아름답게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시집 ‘내 마음의 화음’(문학 아카데미)

책상 위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컴퓨터에 지구상의 모든 것이 저장돼 있다. 어떤 이는 지구를 노트북에 담아 가볍게 들고 다닌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대자연을 누비는 사자나 시베리아 벌판을 주름잡는 호랑이까지 있다. 인간들의 원초적 욕망과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도 공존한다. 게서 사랑을 속삭이는가 하면 검은 거래도 오간다. 컴퓨터에 산호초 숲이 없을리가 없다. 갈대숲이나 대숲, 억새밭도 있고 그 위로 비상하는 새떼들도 있으니…. 파도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는 물론 마음만 먹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컴퓨터는 관대하지 않다. 어떤 이는 ‘내가 키운 산호초꽃이 아름답게 흔들리는 것’이 보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아비규환의 현장만 보일 뿐이다.

〈오광수기자 ok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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