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돈독’에 빠진 ‘7080’

2004.09.01 15:55

‘7080’이 봇물 터진 듯 밀려오고 있다. 이제 그 숫자를 ‘칠천팔십’이라고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연스럽게 ‘칠공팔공’이라고 발음한다. 지난 1월25일 KBS 1TV의 ‘열린음악회’에 처음 내걸렸던 이 간판이 이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은 형국이다.

‘7080’을 내세운 공연은 8월에 이어 9월에도 줄줄이 계속된다. 4일 KBS 창원홀에서는 송골매, 건아들, 장남들, 샌드 페블스 등이 무대에 오른다. 30·40대를 겨냥한 공연이다. 1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는 송창식, 윤형주, 어니언스, 4월과 5월, 하사와 병장 등 70년대 통기타 가수들이 대거 등장한다. 40·50대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추억 마케팅’은 공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음반시장에서 70~80년대 인기곡들의 리메이크 붐으로 이어졌다. 이수영, 성시경, JK김동욱, 서영은 등 꽤 가창력 있는 가수들이 줄줄이 이 흐름에 동참했다. 심각한 불황 속에서 10만장 판매를 훌쩍 넘기는 ‘짭짤한’ 아이템인 셈이다. 얼마전엔 70~80년대 유명가수들의 인기곡들을 모은 ‘명작 7080’이라는 편집앨범도 나왔다.

한번 터진 봇물의 위력은 거세다. 최근엔 건설업계의 마케팅에도 이 익숙한 숫자가 등장했다. 국내 굴지의 한 건설회사가 고객들에게 자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로 ‘7080콘서트’를 열었고, 이 무료공연에는 무려 3만5천명의 관객이 모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7080’의 거센 물살은 전혀 뜻밖의 동네로 빠르게 번져간다. 그 동네는 바로 여행업계다. 70~80년대 스타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이 정도면 거의 ‘추억’이 상처받을 단계에 다다른 듯하다.

연초부터 계속된 ‘7080’의 상업적 성공.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사회 중장년층의 문화적 갈증에 대한 방증이다. 하지만 새로움 없는 ‘과거’는 금세 바닥나게 마련. 최근 열한번째 앨범 ‘Being’을 내놓은 가수 이치현은 “7080 무대가 처음 한두번은 의미 있었지만 나중에 비슷한 무대가 너무 많이 생겼다”며 “결국 추억을 상품으로 파는 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로 꼭 마흔살이 된 ‘자전거 탄 풍경’의 리더 강인봉은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으로는 포크음악의 발전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중장년층의 진정한 문화를 위해서는 ‘7080’이라는 브랜드를 빨리 버릴수록 좋다는 제안이다.

‘과거’의 단순반복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새로운 음악. 다행스럽게도 나이 지긋한 고참 가수들 가운데 몇몇은 여전히 새 노래를 만들고 발표한다. 조용필은 지난해에 18집 ‘Over The Rainbow’를 내놨고, 우리나라에 미국의 모던포크를 처음으로 들여왔던 한대수는 올해 초에 열번째 앨범 ‘상처’를 내놨다. 최대의 걸림돌은 역시 방송, 특히 TV다. 이미 오래전에 10대 중심의 대중음악 지형도를 그려냈던 TV는 ‘노장’들의 새로운 음악을 대중에게 통 선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7080’이라는 이름의 상업주의를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추억의 책장은 어쩌다 한번씩 열어볼 때 의미있는 것. TV에서 비롯된 ‘7080’의 범람이 오히려 추억의 ‘모닥불’을 꺼트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문학수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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