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탑

‘꼰대 증후군’에 걸린 ‘386’

2004.10.01 18:09

‘꼰대:늙은 사람이나 선생님을 이르는 말.’

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아서 인터넷을 뒤져 겨우 찾아낸 낱말풀이다. 그만큼 자연발생으로 생긴 은어라고 할 수 있다. 한 네티즌은 나이 든 사람의 얼굴에 주름살이 많다는 점을 들어 “번데기에서 파생된 말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기자가 이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저 꼰대, 성격 진짜 이상하지 않냐?”

“너, 꼰대한테 일러바치면 죽어.”

아무튼 꼰대란 말을 쓸 땐 뭔가 묘한 쾌감이 있었다. 어른들에게, 구식체제에 반항한다는 느낌이었을까. “너는 왜 꼰대 같은 말만 하냐”는 문장은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진 녀석 같으니…”로 해석됐다. 꼰대는 따라가야 할 지향점이라기보다는 금기시된 역할 모델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꼰대라는 말에 부쩍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 당장 기자 주변을 봐도 ‘꼰대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얼마전 중간 간부급으로 승진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대기업 차장 ㅇ씨. 먼저 부하 직원들의 느슨한 근무태도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에 ‘싸이질’(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 운영)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눈꼬리가 올라간다. 어느덧 잔소리를 내뱉는 자신을 발견한다. 은행 부부장인 ㅎ씨는 “후배들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도 “꼰대의 대열에 끼어버린 내 모습을 볼 땐 울적해진다”고 말한다.

자괴감이 심한 건 이른바 ‘386세대’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5공 시절 어쭙잖게도 ‘교복 자율화’ 세대로 불렸다. 이후 민주화운동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며 성장했다. 그들 자신부터 ‘까라면 까는’ 군대식 직장생활에 넌더리를 내왔다. 가능한 한 ‘쿨(Cool)하게’ 일하고 싶어한다. “내가 무슨 중뿔났다고….” 모른 척 넘어갈 줄 아는, 매너 좋고 마음씨 좋은 상관들을 보면서 숨을 죽이곤 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의 조직은 소리 없이 무너져내릴 위험성이 있다. 조직이 굴러가려면 누군가는 ‘악역(惡役)’을 맡아야 한다. 당나라 군대에도 훈련소 조교는 있었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투로 내버려둔다면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한경쟁의 시대다. 훈련받지 못한 채 어떤 조직에서 제대로 배겨낼 수 있겠는가.

꼰대는 흔히 ‘보수 꼴통’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꼬장꼬장 원칙을 따지는 것을 두고 보수냐, 진보냐를 논하는 것은 곤란하다. 열린 사고를 가진 꼰대도 있을 수 있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흥청망청 쓰이는 것도 어쩌면 제대로 된 꼰대들이 적기 때문은 아닐까.

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시대에 걸맞은 꼰대의 행동수칙을 고민할 때다. 과거와 다르면서도 조직을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리더십. 혹시 이런 건 어떨까.

첫째, 화이부동(和而不同). 후배 세대에 다가서려고 노력하되, 영합하지는 말자. 어차피 같을 순 없는 법. ‘동방신기’ 노래를 부를 줄 모른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둘째, 단도직입(單刀直入). 막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뒤에서 수근거릴까 봐 망설여서도 안된다. 거침없이 말하자.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아파도 크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솔선수범(率先垂範).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따라오지 않는 세상이다. 나 자신 열심히 하면서 성실성을 요구하자.

〈권석천 경제부 차장 milad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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