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예고된 죽음과 맞선 사람들에게

2006.09.01 15:14

[책과 삶]예고된 죽음과 맞선 사람들에게

▲가브리엘을 기다리며…에이미 쿠에벨벡|해냄

[책과 삶]예고된 죽음과 맞선 사람들에게

▲원더풀…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노블마인

AP통신 기자 에이미는 임신을 했다. 생명을 만드는 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나님도 생명을 창조한 뒤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지 않았던가. 임신 20주. 에이미도 여느 임부와 마찬가지로 아기가 뱃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러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스웨덴 SVT방송 메인 앵커인 울라는 모처럼의 휴일에 가족과 함께 섬 나들이에 나섰다. 보트를 해변에 대기 위해 남편 올레는 엔진을 끄고 울라에게 노를 저으라고 소리쳤다. 노를 잡은 울라는 갑자기 노가 납덩이처럼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난 올라 카린 린드크비스트와 그녀의 가족.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난 올라 카린 린드크비스트와 그녀의 가족.

“아들이에요.” 그러나 초음파 화면 속의 아기는 심장이 반밖에 없다. 온몸에 피를 펌프질해 보내야 하는 왼쪽 심장이 없는 아기. 좌심형성부전증후군. 뱃속에서야 탯줄을 통해 생명을 지탱하겠지만 엄마와 떨어져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기는 죽음과 맞닥뜨려야 한다. 삶과 함께 오는 죽음.

울라는 자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신발 끈을 묶기도, 티셔츠를 입기도 힘들어진다. 걷던 중 다리가 뒤로 꺾여 넘어지고, 혀가 뻣뻣해지면서 말이 자꾸 샌다. “제가 루게릭병에 걸렸단 뜻인가요?” “그래요.” 의사가 잘라말했다. 온몸의 근육이 죽어가는 병. 팔과 다리, 근육이 움직임을 멈추고 급기야 폐 근육이 죽으면 죽음에 드는 병.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죽음은 이별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한때는 역겹게 느껴졌을 땀 냄새와 소란스러움과의 이별이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 “홀로 된다는 게 두려워. 버려진다는 게 두려운 거야.”(원더풀)

태어난 지 2시간만에 죽은 아기의 탄생과 죽음을 준비했던 에이미 가족.

태어난 지 2시간만에 죽은 아기의 탄생과 죽음을 준비했던 에이미 가족.

죽음 뒤에 남겨지는 것은 자신과 혹은 죽은 이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런 까닭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고 싶어, 죽음 앞에 서면 미움을 털어버리고 하찮은 것조차 가슴이 터질 듯 사랑하게 되는지 모른다.

에이미는 낙태를 하지 않기로 했다. 뱃속의 아기도 스스로 자기의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으니까. 에이미는 아기의 이름을 가브리엘이라고 지어줬다. 천사. 에이미는 배냇저고리를 장만하는 동시에 아기의 예쁜 관과 장례식을 준비한다. 자신의 품 속에서 2시간을 있다 떠날 아기를 위해.

울라는 코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죽음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록한다. “우리 내면엔 힘이 있는 것 같아. 다만 삶이 소란스러워서 몰랐던 거겠지.” 울라는 2004년 3월 아름다운 기억을 가족과 이웃에 남겨두고 떠나갔다.

‘가브리엘을 기다리며’와 ‘원더풀’은 예고된 죽음과 맞서 싸우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짧은 나머지 삶을 사랑한 두 사람의 기록이다. ‘가브리엘을 기다리며’가 (비록 사랑하는 자신의 아기이지만)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의 기록이라면 ‘원더풀’은 자신에게 닥쳐온 죽음과 나눈 이야기다. 각권 9,500원, 9,800원

〈윤성노기자 ysn0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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