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이 가을, 제주도로 옵서 예

2007.10.04 17:35

오성찬 소설가

오성찬 소설가

추분도 추석도 다 지나니 아침저녁 가을바람이 한결 서늘해졌다. 우리나라는 본래 봄과 가을이 짧은 편이지만 온난화현상으로 올 가을도 유난히 짧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설운 사람 보냄시매) 가거들랑 혼저 옵서 예.” 제주 출신 가수 혜은이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제주의 가을은 서러워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런 중에 제주의 가을을 상징하는 것은 이 무렵 야산에 무더기로 피어나 물결치는 억새의 춤사위다. 억새는 음력 팔월 초까지 퍼렇게 삘기로 솟아오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애초엔 적자색 꽃으로 피어난다. 그것이 차츰 회색으로 바뀌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하얗게 바래간다.

4·3항쟁 때 산에 올랐던 게릴라들이 귀순의 증표로 “흰 깃발 대신 억새 한 묶음을 들고 내려왔노라”는 증언처럼 이 무렵 제주 야산의 억새 무더기는 깃발처럼 나부낀다. 그 기간은 길기도 할뿐더러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리고 억새는 하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을 맞으면서 꽃에 달고 있던 씨앗들을 모두 사방으로 날려 보내고 빈 꽃대만으로 한겨울을 나는 것이다.

이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고 5일부터는 제주시 탑동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46회 탐라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6~7일 이틀 동안 제주경마공원에서는 ‘제주마(馬)축제’가 열리고 있다. 제주는 고려 적 100년을 몽골에 말을 길러 바쳐야 하는 식민지 역할을 한 때가 있거니와 올해 이 축제 기간에는 마상무예를 하는 이 나라 테우리(목동)들이 와서 별 희한한 묘기를 다 보여준다 하니 구경거리가 될 만하겠다. 또 이달 13일부터는 애월읍의 야산, 새별오름에서 억새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연초 들불축제의 현장이기도 한 이 오름 일대에는 이 오름뿐만 아니라 몇 개의 오름이 어우러져 있어서 여기 물결치는 억새 무더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거기다 이곳은 한라산 서부지구 장관의 오름 능선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원룡 박사가 제주 고유 관광자원의 첫째로 손꼽는 이 부드러운 오름의 능선들, 맑은 가을하늘 아래 이 능선을 꼭 한 번 와 보시라고 전국의 안목 있는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제주민속의 해’인 올해, 제주시 중심의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는 지금 제주의 각종 허벅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허벅은 과거 수도 가설이 충분치 못했을 시절 바닷가나 원거리의 샘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이 고장만의 별난 질그릇이다. 제주 흙을 이겨 질박하게 구운 허벅은 안정된 굽과 불룩한 몸통, 그리고 가는 어귀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거기다 열대여섯 살 어린 비바리들이 지던 대배기, 아주 큰 지세허벅 등 허벅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제 그 역할 자체를 아주 부려놓은 이 그릇들은 정물로도 조형미가 아주 뛰어나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게다가 제주는 올해가 특별한 해이다. 그 동안 막연히 좋다고만 여겨왔던 자연 자원들이 세계의 인정을 받은 해이기 때문이다. 섬 중심에 우뚝 솟은 한라산과 해 뜨는 일출봉, 그리고 화산 활동으로 조성된 만장굴을 비롯한 용천굴, 당처물동굴 등 세계의 대표들이 만장일치 박수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주는 단연 동아시아의 흑진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주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꼭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주의 겉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굴곡 많은 제주의 역사, 이 고장 사람들의 검질긴 삶도 들여다봐 주십사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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