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위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2008.08.14 17:51
문정호 | 웹진 가슴 필자

독특한 발상 전환으로 비범한 성취

이상은을 설명함에 있어 성별 구분과 여성 뮤지션의 희소성을 강조하는 건 재평가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던 1990년대 후반부터 사실상 무의미했다. ‘더딘 하루’(1991)부터 ‘Asian Prescription’(1999)까지의 흐름에서 일관성 있게 증명한 양질의 결과물들은 성별 구분 없이 그 자체로 전대미문이었기 때문이다. 균일하게 뛰어난 완성도는 개별적인 해석이 용이했고 이상은을 스타일리스트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였으며 이를 근거로 했을 때 1990년대 그녀와 동일 선상으로 간주할 만한 이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99위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여기서 이상은을 여전히 ‘담다디’로 기억하는 대중과의 간극이 발생하는데, 공신력 있는 음악매체의 부재가 낳은 불편함은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 다시 말해 신보가 발표된 시기에만 드문드문 재조명하는 방식은 이상은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구하는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었고, 결국 오늘날까지 ‘담다디’를 기점으로 한 물음과 대답만을 지겹게 반복하는 실정이다. 이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계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뮤지션의 행보에 수용자가 따라가지 못함을 의미하고, 궁극적으로는 이상은 외 현재진행형 작가들의 작품에 대중이 어째서 그토록 둔감한가를 실감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인 셈이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뮤지션 스스로가 출신을 부정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해내며 모든 걸 받아들인 상황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일반적으로 ‘이상은’(1993)부터 ‘외롭고 웃긴 가게’까지는 이상은이 증명한 최고의 ‘음악적 성취’로 꼽힌다. 그와 같은 기록적 업적이 존재함으로써 이전에 진행된 모색의 기간에 비로소 가치 부여가 가능했고, 이후 한동안 국제적 통용에 몰두할 수 있었다.

특히 하지무 다케다라고 하는 동반자를 만나 여태껏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풍경을 그려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1995)와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의 이상은은 소름 끼칠 만큼 비범하다. 그중에서 ‘외롭고 웃긴 가게’를 따로 말한다면 발상의 전환과 구현 방식이 매우 독특했다. “당시 현실은 하이-파이가 어울리지 않았고 필연적이었다”며 로-파이 방법론을 기초로 성공적인 작업을 이끌어낸 과정은 관점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향후 동일한 방법이 인디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를 확인해 본다면 이는 더욱 구체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외롭고 웃긴 가게’는 이상은이 2000년대 들어서도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결과물을 꾸준히 발표해내며 뮤지션으로서 시대에 반응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는지 모른다.

이미 ‘공무도하가’로 멀리 떠난 바 있었던 입장에서 다시 속세의 일상을 경험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정확하게 와닿지 않는다. 다만 궁금한 건 불과 2년여의 간극을 두고 어떻게 그토록 상반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었으며 음악적으로도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공무도하가’로 이상향을 맛보았음에도 현실로 돌아온 걸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아는 아름다움은 얼마나 처연하고도 희망적인가. 사막처럼 메마른 음악에 언어유희라는 비를 뿌리면서 특별한 의미가 가능해진 느낌이다.

어느덧 이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당신이 이상은을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역시 ‘외롭고 웃긴 가게’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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