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바람 ?

2009.05.07 09:27
최병태 특집기획부장

올해 대학생이 된 큰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학교 생활 안내서를 우연히 들춰보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이 지긋지긋하다던 아이가 대학에 가서 뭘 배우고 어떤 생활을 할지 궁금했습니다. 안내서에는 대학 4년간 교육과정, 전공과목 소개, 진로·직업 소개 등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다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육과정 중 ‘교양’ 교과목이었습니다. 교양과목 중 상당수가 실용영어, 제2외국어, 경제, 경영, 기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네가 이공계지만 교양과목이 너무 부실한 것 같구나.”

교양이라…. 우리는 뭘 교양이라고 하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신적 자양분이 아닐까요. 그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이를 굳이 학문적 영역으로 따지자면 문학, 역사, 철학일 것입니다. 뭉뚱그려 말하면 인문학일 것이고요. 나의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공계는 전공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아요?” 아이 말은 곧 인문학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안해도 아무런 문제 없지 않냐는 뜻이었습니다.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했습니다. “어떤 전공을 하더라도 그것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진리는 모두 통해 있고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곰팡내 펄펄 나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어떤 분야라도 결과물은-논문이든, 하다 못해 짧은 보고서일지라도 -글로 표현돼야 하고,글로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부를 혼자서라도 꼭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도 일렀습니다. 인문계 학생들도 우리 아이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입시지상주의의 뒤틀린 교육 현실에서,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어차피 액세서리일 뿐 모든 게 취업과 연결돼 있으니까요. 한때 우리 사회는 이공계 위기라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공계의 위기가 그냥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사·철 같은 기초 학문 홀대로 인한 상상력 결핍의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또 인문학의 위기라고 아우성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대학 등과 연계해서 인문학 강좌를 앞다퉈 열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실직자들의 정신적 자립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특히 많습니다.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마뜩잖은 부분도 있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물론 낫겠지만 일시적 유행에 그칠까 하는 우려에서입니다. 우리 사회가 늘 그랬잖습니까. 펄펄 끓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현상을 수없이 봐 왔으니까요.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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