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명옥헌 원림의 꽃구경

2009.09.13 17:27 입력 2009.09.14 00:52 수정
하응백 문학평론가

어느 봄날 고등학교 국어수업 시간. 선생님이 막 교정에 피기 시작한 꽃을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진해에서 벚꽃 필 때 벚꽃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떨어지는 벚꽃잎이 술 위에 점점이 떨어지고 그 꽃잎을 안주삼아 한 잔 들이켜면 그 기막힌 풍류가 이태백이 부럽지 않다는 말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여서 나도 이담에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해 봐야지 하고 쓸 때 없는 결심을 한 적이 있다. 그후 꽃구경을 많이 다녔다.

하 응 백<br />문학평론가

하 응 백
문학평론가

대학시절 겨울, 보길도 예송리 바닷가에서 보았던 동백꽃. 뚝뚝 떨어진 동백꽃의 붉은 잔해는 차라리 처절했다(그때 예송리 마을에서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대학생이었던 이장님 딸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황동규, 홍신선, 김윤배, 김명인 시인 등 몇 분과 함께 하릴없이 꽃구경 가자고 여행을 떠난 적도 많다. 대개는 지방에 있는 홍신선, 김명인 시인의 제자나 후배 시인들이 ‘꽃 피었습니다. 내려오세요’라는 긴급통신을 보내고, 이에 호응해 급조된 여행단이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 번은 욕지도에 사는 시인 한 분이 ‘지금 두미도에 동백이 만개했을 겁니다’라는 통신을 보내, 역시 급조된 여행단이 남쪽으로 출발했다.

박재삼 시인의 본거지 삼천포(사천이라고 하면 좀 정감이 덜 간다)에 들러 거나하게 한 잔 걸치고 3월 초의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한 시간여를 갔다. 두미도는 사천만에 있는 작은 섬. 하지만 두미도에 동백은 만개하지 않았다. 아니 동백나무가 별로 없었다. 그런들 어떠랴. 인근 바다에서 금방 잡아올린 싱싱한 꼴뚜기를 안주로 해서 한 잔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목적은 사실 꽃이 아니라 벗과 바람, 술과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이었던 것이다.

늘 그랬다. 꽃구경은 핑계다. 황동규 시인 등과 선운사 봄 동백을 보러 간 것도, 안도현 시인과 복수초를 보러 간 것도, 소설가 조용호와 산수유를 보러 간 것도 다 그렇다. 꽃은 하나의 무대장치였을 뿐이었다. 꽃은 순간적으로 찬란하고 인생은 지속적으로 지루하기 때문에, 꽃을 핑계로 가끔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음이 꽃구경의 실체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8월 초 전남 담양군 고서면 명옥헌 원림(鳴玉軒苑林) 꽃구경은 그게 아니었다. 진짜 꽃구경이었다. 몇번 가보았던 소쇄원을 들렀다가 아무 기대없이 명옥헌 원림이나 가볼까 해서 들어선 길. 안내판도 잘 되어있지 않아 다른 길로 들어갔다가 어렵게 차를 돌려 언덕길을 돌아서니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명옥헌 원림. 배롱나무 붉은 꽃이 짙은 녹음 위로 하늘까지 물들어 있었다. 별안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세계가 나의 눈을 휘감아 황홀경으로 몰고 갔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1619~55)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이다. 명옥헌이란 맑은 물 소리가 옥을 굴리는 듯하다는 뜻이다. 명옥헌 아래와 연못 주위에 그리고 연못 가운데 인공섬에 심어진 배롱나무는 고목이 되어 엄청난 물량의 배롱나무 꽃을 달고 있다. 이 붉은 꽃이 만약 사랑이라면 지옥까지라도 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연못까지 붉은 꽃 그림자로 물들어 물빛이 붉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꽃구경을 가실 분들은 여름 뜨거운 날, 복더위가 왔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 꼭 담양 명옥헌 원림을 가시라. 인근 담양읍에서 떡갈비도 먹고 관방제림의 시원한 강변길도 산책하시고, 또 인근 창평면에서 암뽕 순대도 드시고 삼지천 마을 흙돌담길도 걸어보시라. 보고 먹고 느끼는 삼박자의 꽃구경이 인생의 지루함을 조금은 달래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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