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삶과 환경’

2009.11.01 17:28 입력 2009.11.01 23:30 수정
안치용 ERISS 소장 |백승국(고려대 3년)·배진범(연세대 4년)

모두 잠든 때 음식물쓰레기 수거 ‘아름다운 손’

청주시 위탁 … 복지 동종업계 최고 수준 “일할 맛”

공공서비스·저소득층 고용창출 ‘사회적 가치’ 구현

100만명 혹은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어떻게 작동할까.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 일하며 또 사랑하고 싸우며 살아가는 압축적이고 거대한 공간은 어떻게 유지될까. 대부분 큰 관심을 갖지 않지만 도시 전체의 배설과 관련된 시스템은 그 도시의 위생과 청결, 나아가 질서와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먹고 남은 음식물을 배출하고 수거해 처리하는 것 또한 이 시스템에 포함된다.

사회적 기업 탐방단이 지난달 15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회적 기업 ‘삶과 환경’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YeSS 배진범·조현정·백승국씨, 삼일회계법인 장상길 회계사, 사회투자지원재단 임동현 차장, 삼일회계법인 정재웅 회계사, ERISS 안치용 소장, ‘삶과 환경’ 김경락 대표.  |김기남기자

사회적 기업 탐방단이 지난달 15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사회적 기업 ‘삶과 환경’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YeSS 배진범·조현정·백승국씨, 삼일회계법인 장상길 회계사, 사회투자지원재단 임동현 차장, 삼일회계법인 정재웅 회계사, ERISS 안치용 소장, ‘삶과 환경’ 김경락 대표. |김기남기자

다행히 지금은 배출단계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다른 쓰레기와 분리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이것을 따로 모아 아파트 단지의 특정 구역이나 동네의 어느 곳에 놓여진 통에다 버린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시민들이 그 통에다 음식물 쓰레기를 채울 수 있는 건 매일 수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거는 시민들이 잠든 사이 수거회사 직원들이 일일이 손을 써서 이뤄진다. 관을 통해 처리시설까지 전달되는 생활하수와 달리 음식물 쓰레기 수거는 아직까지는 사람이 담당해야 하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럴 것으로 전망된다.

충북 청주시에 소재한 ‘삶과 환경’은 청주시민들이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청주시 8분의 1 지역의 음식물 쓰레기를 책임진다. 사실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운반업’은 공공서비스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며 모든 도시에 필수적이다. 과거에는 공무원들이 담당한 업무였다. 업무 효율화와 공무원 인원 감축을 이유로 일부 공공서비스가 민간으로 이전될 때 음식물 쓰레기 수거 사업도 포함됐다. ‘삶과 환경’은 2004년 10월 청주시의 음식물 쓰레기 수거 사업 민간업체 위탁 공모에서 위탁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출범했다.

2007년 12월에 법인으로 전환했고, 2008년 12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삶과 환경’이 추구하는 가치는 저소득 주민들의 고용창출이다. 물론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것 자체로도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또 다른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삶과 환경’이 직원을 뽑는 기준은 제일 먼저 소득이 낮은가이고, 그 다음이 육체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삶과 환경’ 직원들이 충북 청주시 일원에서 밤늦게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삶과 환경’ 제공

‘삶과 환경’ 직원들이 충북 청주시 일원에서 밤늦게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삶과 환경’ 제공

‘삶과 환경’은 고용인원이 9명에 불과한 작은 기업이지만 직원 복지에 있어서는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이다. 동종업계 노동자들과 비교해 월급이 20만원 정도 많다. 그런데도 회사는 4일 근무 후 1일 휴무제를 시행하는 등 노동 강도가 과도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현재 직원 9명 가운데 한 명을 빼고는 창업 때부터 함께한 사람들이라는 데서 근무환경에 대한 직원들의 높은 만족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삶과 환경’의 이 같은 직원 배려 정책은 청주시라는 좁은 경쟁구도 내에 위치한 이곳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운반업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이 ‘삶과 환경’을 의식, 임금과 노동환경 등을 개선하면서 복지의 상향 평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삶과 환경’은 사회적 기업 사이에서도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으려고 애쓰는 데 비해 ‘삶과 환경’은 이 지원을 스스로 포기했다.

‘삶과 환경’ 김경락 대표는 “정부의 사회적 기업 지원예산은 지역마다 할당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원금을 받으면 정말로 지원이 필요한 다른 사회적 기업이 못 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삶과 환경’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한 지자체에서 수입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어 다른 사회적 기업 비해 유리한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자기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지역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삶과 환경’의 다소 ‘엉뚱한’ 경영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체의 본령을 넘어서는 것으로 이어진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를 통해 번 돈의 일부를 좋은 용도로 기부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간주할 수도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내용의 홍보전달을 제작해 아파트단지 등에 돌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동종 업계 종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운반 업체의 수입은 수거한 무게에 비례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사회적으로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수거업체 입장에서는 수입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하기 힘들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체가 자발적으로 배출량 절감 운동을 펼치는 것은 제 사업 영역을 스스로 깎아먹는, 마케팅 용어로 이른바 ‘카니발리제이션’에 해당한다. 지자체 공무원들도 ‘삶과 환경’이 동사무소 등에 자기 예산을 들여 제작한 홍보물을 붙이는 모습에 의아해 한다. 어떤 기업도 알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삶과 환경’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우선하는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절대 상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

청주시의 쓰레기 수거 수탁업체로 지정돼 사업을 벌인 2005~2007년의 3년에는 영업 범위가 청주시의 4분의 1이었다. 그 3년 동안 직원 18명을 고용했다. 2008년 재계약에서는 담당지역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사업영역이 축소된 만큼 고용규모도 종전대로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삶과 환경’은 과거 자사의 사업영역에서 새로 사업을 시작한 업체에 자사 직원 9명을 고용승계시켰다. 사업이 축소됐지만 실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김 대표는 “극단적으로 말해 ‘삶과 환경’이란 기업은 의미가 없고 ‘삶과 환경’을 통해 저소득층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어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서비스는 민간 사업영역에 비해 소멸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 사업자들이 바뀔 수 있겠지만 시장은 유지된다는 얘기다.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업종 특성상 항상 누군가를 고용해야 한다면 저소득층 사람들이 일을 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또한 계속 제공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삶과 환경’의 실업자는 자신뿐이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현재 청주시에는 모두 6개의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체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의 관건은 정부의 위탁사업자 공모에서 선정되는가 아닌가이다. 경쟁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삶과 환경’은 선정 기준에 해당 업체의 공공성도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선정 과정에 혜택을 받는 건 없다. 김 대표는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모델이 사회적 기업이라고 확신한다”며 “공공서비스 수행 업체 공모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의 공공성이 평가기준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서비스 위탁시장에서 앞으로 ‘삶과 환경’과 같은 사회적 기업들이 더 많은 기회를 잡아 공공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사회적기업이 희망이다](31)‘삶과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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