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재발견

2010.01.01 05:10
양효성|작가·어문학자

[미추홀 칼럼]광장의 재발견

‘문화가 경제를 창출하면 선진국가요, 경제가 문화의 젖줄이면 후진국’이라는 말이 있다. 도시란 한마디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모두 다른 삶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시민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동질성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만나고 붐비는 곳이 광장이다. 도시관광을 할 때도 대부분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시장을 둘러본 뒤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찾는다.

인천에는 그런 광장이 있는가? 동인천이나 부평역은 이제 사람이 모이기에는 비좁고, 시청 앞도 어색하다. 문화예술회관 앞은 어떨까? 교통도 시외버스터미널에 지하철에 또 주차장까지 그만하면 됐다. 그러면 이 문화광장에서 시민은 무엇을 할까?

온라인시대 벽에 갇힌 사람들

만남과 산책, 벼룩시장과 놀이마당, 기념사진을 찍고 미술전시회와 음악회를 즐기며 소망을 빈다. 친구와 약속장소를 문화광장으로 정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광장에 내린 뒤 시집 한 권을 펴들고 산책하다 길 건너 먹자골목에서 정담을 나눈다. 어느 나라에 가든 주말의 벼룩시장도 재미있다. 시청인터넷에서 벼룩시장 허가를 내준다. 주말 새벽부터 오전 11시까지 광장을 바둑판으로 나누어 한 평짜리 깔판에 집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을 내다 판다. 온 가족이 좌판을 지키고 팔리면 그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사도 좋고 또 바꿔도 좋다. 골동품, 악기, 음반, 책, 꽃병을 사고팔면서 웃음을 나누고 새로운 친구도 만든다. 만남이 오히려 더 큰 나눔과 자선이 된다.

광장에서는 탈춤도 시낭송회도 열린다. ‘겨울나그네’의 마지막 곡인 손풍금을 돌리는 사람도 바로 이 광장에 있었다. 좌판을 거두고 전람회장을 돌고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공연을 보고 일찍 귀가하면 어떤가? 시민들은 주중에 모두 바쁘다. 전시장 문도 오전 11시에 열고 오후 8시에 닫으면 어떨까? 그러면 이 주변은 인사동이나 파리처럼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다.

도시는 장(場)에 간다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시장에 모이는 온갖 재화를 지키기 위해서 길목에 성(城)을 쌓았는데 영어의 ‘씨티(City)’가 중국어로는 ‘청스(城市)‘인 것도 이런 연유다. 이 장사하는 너른 마당에는 당연히 모임의 장소인 공회당과 신전과 여관과 술집도 따라 서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리스의 ‘아고라(廣場)다’. 고려는 불교와 농사와 관련된 축제가 성행하던 시대였고 당연히 여기저기 마당(廣場)이 마련되었다. 조선 전기에 이런 마당은 많이 축소되었지만 후기에 봉산 탈춤과 판소리로 그 마당은 다시 넓어졌다. 그래서 ‘마당놀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신단수 아래 단군이 강림하셨을 때도 그 나무 앞에 너른 마당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광장 그리워

세계적인 광장으로는 뉘렌베르크의 뢰머광장,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마드리드의 솔 광장 등을 꼽을 수 있다. 로마의 스페인 광장은 가보면 자유공원 청관의 돌계단과 비슷하다. 문화회관 계단도 사람들이 즐겨 앉으면 미추홀광장이 될 수 있다. 뮌헨의 시청 광장에는 정오의 시계탑 구경으로 붐비고 거리의 악사들은 흥겹다. 중국 지닝(濟寧)시는 공자의 고향 옆 작은 마을인데 밤이면 남녀노소들이 산책을 하고 아이들이 물통을 든 채 큰 붓으로 타일바닥에 글자를 쓴다. 어른들은 흐뭇하게 그 고사리손을 지켜본다. 이런 것이 삶이다.

텅 빈 광장은 유령의 도시를 상징한다. 중앙공원에는 저녁마다 축구 농구에 체조와 걷기로 이미 시민의 발걸음이 잦다. 이 사람들이 광장으로 한 걸음 더 걸으면 자연히 광장은 이루어진다. 온라인시대가 되면서 인터넷과 TV에 시선을 고정하다 보면 플라톤의 동굴처럼 인간은 모두 서로 벽을 치고 단순해지게 된다. ‘인형의 집’이 아니라 ‘아파트의 아비타’가 될 수밖에 없다. 도시란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가 함께 모여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재개발도 있지만 재발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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