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나비와 같다

2010.02.01 18:10
이현우 | 서평가·필명 ‘로쟈’

[문화와 세상]행복은 나비와 같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를 여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면, 그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바가 사람들마다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궁색하지 않고 식구들이 건강하며 가정이 화목하다면 보통은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이 정도가 행복에 대한 통념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어느 한때였더라도 말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던가를 한번 헤아려보시라. 나로선 먼저 생각나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온가족이 가끔씩 콩나물공장에 가던 일이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콩나물공장이 있었고, 우리는 다섯 식구가 바구니와 양동이를 들고서 반찬거리를 사러 다녀오곤 했다. 그냥 가족 산책이어도 좋았다. 들녘 사이로 난 큰길을 걸으며 해 저물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부모님이 아직 젊은 나이였고, 나는 여덟 살, 아래로는 두 살 터울의 두 동생이 있었다.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

그렇게 치자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어느 날도 행복했다. 월세를 살던 우리 집에 주인집에도 없는 세탁기가 들어온 날이다. 최신 세탁기를 아버지가 면세품으로 사오셨는데, 마땅히 놓을 자리가 없어서 방에 들여놓았다. 한데 호스가 짧았다. 다른 호스를 사다가 잇대고 나서야 처음 세탁기를 돌리게 됐다. 하지만, 호스의 연결부분이 수압을 견디지 못해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다. 집안 바닥과 천장이 졸지에 물벼락을 맞은 꼴이 됐지만, 그래도 다들 유쾌했다. 이런 엇비슷한 기억이야 대개들 갖고 있을 법하다. 그건 적어도 우리가 행복했다는 얘기고, 또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면 초과달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많은 콩나물’과 ‘더 좋은 세탁기’가 있어야지만 우리가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행복에 대한 얘기를 꺼낸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마 전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사상 면이나 군사 면에서 북한이 강국의 지위에 올라섰지만 아직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리고는 최단기간 안에 ‘인민생활’ 문제를 풀어서 유훈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말하자면 ‘흰쌀밥에 고깃국’이 북한식 사회주의의 과제이자 목표다. 북한의 경제난과 현실에 대한 이 ‘예외적인 시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이미 LA갈비에 비프스테이크도 먹고 있다고 응수해야 할까?

남한 또한 ‘흰쌀밥에 고깃국’이 부의 척도이자 행복의 조건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옛날 얘기가 됐다. 아직도 저소득 빈곤층이 적잖게 남아있지만 국민 대다수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으로 한 끼를 때우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의미인가? 북한식 사회주의의 과제를 우리는 이미 달성했다는 뜻이다. 더불어 행복은 더 이상 미래의 몫이 아니라는 의미다. 여전히 ‘더 많은 행복’과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한마음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태도와 오십보백보다. 우리가 적어도 북한보다는 더 낫다고 으스대고 싶다면, ‘무지개 너머’를 좇는 일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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