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기찻길 옆 오막살이

2010.11.10 19:40 입력 2010.11.11 14:12 수정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 칼럼]한나라당과 기찻길 옆 오막살이

개혁적 중도보수로 한나라당 노선을 바꾸겠다고 선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안상수 대표가 일주일 만에 다시 좌파타령을 시작,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나라당은 친서민을 실천하겠다며 서민정책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놓고는 스스로 특위안을 거부하는 모순적 행동을 했다. 그러자 특위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않으면 야당과 연대하겠다며 유별난 대응을 했다. 한나라당은 또 부자감세 철회 검토 입장을 하루도 안돼 뒤집었다. 그러나 이에 맞서 감세 철회를 논의하기 위한 의총 소집안에 무려 45명의 의원이 서명하는 데도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요즘 한나라당이 이상해졌다. 정상이 아니다. 복지 폭탄을 맞고 그런 것 같다. 지난 3일 오세훈·김문수를 불러 최고·중진 연석회의를 할 때는 복지 이야기로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한다. 그게 회의 주제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가더라는 것이다. 복지 문제에 대해 변명이든 대책이든 뭔가 해야겠다는 복지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인지 김황식 총리도 오락가락이다. 노인 무료 승차는 과잉복지라며 반복지의 깃발을 들었다가 반나절도 안돼 무료 승차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해명하고는 보름쯤 지나 다시 노인 빈곤층은 국가 아닌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반복지·친복지 사이 애매한 처신
변화에 대한 중압감 탓인지,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지 보수정권이 갈피를 못 잡고 몸과 마음이, 손과 발이 따로 논다. 설상가상으로 자칭 전통 보수들로부터 보수가 나쁘다는 거냐, 보수를 버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는 공격과 협박을 받자 더욱 엉킨다. 보수를 버리면 기반이 무너질 것 같고, 고수하면 정권을 놓칠 것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반복지로 소문나는 것은 막아야 하고, 그렇다고 야당과 복지 경쟁할 처지는 아니고, 반복지와 친복지 중간 어디쯤에 서야 하는데 그 위치가 애매해서 처신하기가 까다롭다. 그러다 보니 복지 이야기만 나오면 설명이 길어지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땅 짚고 헤엄치는 꿈 같은 시절을 보낸 줄 이제야 알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장이 최고요, 경쟁력이 우선이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최선이라고 하면 모두들 꼼짝 못했다. 그러나 보수 담론은 급격히 그 힘을 잃고 있다. 한나라당, 살기 위해서라도 달라진 정치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이때 안상수가 다시 나선다. 지난 2일 그는 개혁적 중도보수란 굳건한 보수 기반 위에 있되 국가가 ‘약간’ 개입해서 서민과 중산층을 껴안고 가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수들은 속지 않는다. 중도를 끼워 넣으면서 보수를 슬쩍 뒤로 밀쳐 놓으려는 그 수법을 잘 안다.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바라는 것은 보수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수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능력도, 의사도 없는 이 세력들은 이름 바꿔치기를 해서 그때 그때 사정 따라 대충할 요량으로 개혁, 중도, 보수 세 단어를 무지막지하게 합쳐 놓았다.

영국을 보자. 당당히 보수당 이름을 내건다. 자랑스러운 보수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남미 보수세력은 보수인 주제에 무슨 개혁당이니, 혁명당이니 한다. 보수에 드리워진 부패·쿠데타·독재의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서다.

안상수는 자유민주주의, 경쟁, 시장원리를 보수의 가치로 나열했는데 그건 일부에 불과하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권, 기회 균등이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의 보수적 가치다. 중도를 하고 싶다면 그런 보수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실현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제대로 된 보수의 가치 실현 기대
가짜 보수 한나라당이 보수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회피하느라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맛보지 못하면 이 사회에 위대한 보수의 전통을 세울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라면 당장 힘들더라도 그런 과제를 내려놓으면 안 된다.

어차피 보수일 거면서 보수 정체성을 감추고 생존해 보려는 얄팍한 수법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오른손에 보수를 쥐고 왼손으로 중도를 잡는 꿩 먹고 알 먹기는 꿈도 꾸면 안 된다. 한나라당 솜씨로는 중도라는 날랜 새를 맨손으로 잡을 수 없다. 안상수 구상은 가능하지 않다. 그건 솔직히 분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나라당, 앞날이 깜깜하다. 그런데 이렇게 얼렁뚱땅, 갈팡질팡 정치세력이 요즘 가장 인기있는 정당이란다. 한국이 깊이 잠들어 있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동요 하나가 생각난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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