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정치를 만날 때!

2011.04.01 19:08 입력 2011.04.01 21:28 수정
목수정 | 작가·프랑스 거주

정교분리의 원칙(laicite)은 말 그대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의미한다. 일찌감치 종교가 국가 못지않은 권력을 누려왔던 유럽에서, 종교에 대한 견제는 길고도 힘든 싸움이었다. 프랑스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이 처음 천명되었던 것은 모든 진보적, 근대적인 시민사회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789년 시민혁명의 인권선언에서였다. 이후 18, 19세기에 걸친 가톨릭세력과 혁명세력 간 반목은 결국 1905년 정교분리 원칙이 법으로 제정되면서 프랑스라는 공화국을 지탱하는 대원칙으로 채택된다. 국가는 시민들의 종교의 자유를 간섭하지도, 특정 종교를 지지하거나 편향하지 않으며, 종교 또한 국정에 간섭할 수 없고, 공공의 영역에서 종교적 색채가 개입되어선 안된다. 특히 공무원들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 어떤 종교적 신념도 개입시켜서는 안된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원칙은 이슬람권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머리에 착용해 왔던 히잡의 학교 내 착용을 금지하는 법에 이어,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모든 공공장소에서 금지하는 법을 탄생시키는 데까지 근거로 작용한다. 최근 들어 프랑스 우파가 이슬람세력을 탄압할 목적으로 정교분리법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고,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목적인 것도 분명하지만 정교분리가 프랑스라는 공화국을 이끌어나가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인 것은 분명하다.

[목수정의 파리통신]종교가 정치를 만날 때!

얼마 전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공립학교에서 유대인학교와 함께, 서로 각자의 학교를 오가며 합창연습을 진행하고 ‘음악의 축제’ 날에 공원에서 합동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알려왔다. 문제는 그 유대인학교가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정통유대인식 결혼을 한 부부의 자녀에게만 입학을 허락하는 소위 시온주의자들의 학교였던 데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즉각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공립학교에서 특정 종교를 가진 학교와 공동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있으니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몇몇 학부모가 주장했다. 그러자 평소엔 유대인인지 알 수조차 없었던 몇몇 유대인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공격했다. “이건 학교들 간의 문화적인 교류일 뿐. 이걸 반대한다면 당신들은 유대인 차별주의자들이다.” 조용하던 학교와 학부모들은 서로의 정치적 입장과 인종적인 뿌리를 들먹이는 살벌한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교육청, 지역 국회의원, 파리시청 교육담당관에 투서가 날아가고, 급기야 르몽드지에서 사건을 취재했다. 결국 교육감으로부터 학교장에게 이 프로그램을 당장 중지시키라는 명령이 날아왔다. 총성 없는 전쟁이 한 달 동안 학교를 휩쓸고 지나갔다. “종교가 공공의 영역에 그 옷깃을 스치는 순간, 시민전쟁이 일어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난 가톨릭 신자지만 종교는 사적인 선택의 문제이며, 학교는 완전히 공적인 영역이다. 그 어떤 종교적인 색채도 학교교육에 개입되어선 안된다!”는 한 학부모의 말은 프랑스인들이 나누는 정교분리에 대한 인식의 차원을 잘 설명해 준다.

뚜렷한 종교 분쟁 한 번 없이, 많은 종교들이 조용히 동거를 해오던 우리나라는 집권자의 편향적 종교 성향으로 초유의 종교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앓고 있다. 대통령을 무릎 꿇리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법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종교집단의 분수를 모르는 거만과 독선은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자멸시키는 중이다. 몇몇 권력자들이 정치와 종교를 뒤섞어 버리기 전엔, 적어도 기독교가 “개독”으로 불리지는 않았던 사실을 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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