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2011.05.01 10:39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뿌옇게 낀 먹구름을 보니 당장이라도 굵은 빗방울이 쏟아질 것만 같다. 내일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내일 모레엔 황사가 심해 외출 금지란다. 4월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데, 봄은 어디론가 실종되어버린 것 같다. 봄은 어두운 시대의 끝으로 희망과 자유를 상징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2011년의 봄은 차갑게만 느껴진다.

문득 이성복시인의 ‘1959년’ 시에 나오는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봄은 오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88만원 세대는 2011년의 봄을 아직 맞이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뜨거운 여름을 준비해야 한다. 봄이 상징하는 희망과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어깨에 짊어진 등록금의 무게가 젊은 청춘들의 펴보지도 못한 날개를 꺾어버린 듯하다.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악천후 속에서도 반값 등록금을 위한 1인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청춘의 개화(開花)를 위한 기성세대의 노력이다. 4월 29일 1인 시위에 나선 건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었다. 현재 등록금 문제에 대해 그는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제공되어야 할 권리이다.”라고 말하며, “지금의 대학은 너무도 야만적이다. 지성의 성장이 이뤄져야 할 대학은 한국에서 야만의 상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마디 한 마디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등록금이 높다고 교육의 질이 높은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등록금이 싸면 교육의 질이 내려간다는 정부의 말은 옳지 않다. 등록금이 높은 지금 교육의 질은 높지 않을뿐더러 비정규직 교수들과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게 실정이다.”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1인 시위에 나선 이유에 “민주노총은 잘못된 교육 정책을 바로잡고, 예비노동자들과 함께 힘차게 투쟁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김영훈 위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두 개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이성복 시인의 ‘1959년’과 박노해 시인의 ‘스무 살의 역사’가 그것이다. 우선 우중충한 날씨 속에 시 ‘1959년’에서 1959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본다.

1959년도에는 그다지 특별한 역사적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1960년 4․19혁명이 있기 1년 전으로 자유당 독재가 가장 심했을 시기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시의 중간쯤에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무기력(無氣力)과 불감증(不感症)으로부터/불러 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 해에 비해/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수식(修飾)했을 뿐 아무것도 추억(追憶)되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카이스트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우리가 당면한 등록금 문제에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절망감이 녹아 있다. 그러나 ‘야만적인’ 대학 현실에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젊은이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힘들다. 타성에 젖은 까닭도 있을 것이고, 현실에 대한 ‘무기력함’과 ‘불감증’에 기인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절망감을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가 우리 세대에게 가지는 의미는 크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지만 매일의 작은 움직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두 번째 시는 박노해 시인의 ‘스무 살의 역사’다.

'우리 스무 살 할아버지의 손에는
신분제를 타파하는 죽창이 들렸고
우리 스무 살 할아버지의 손에는
계급차별에 맞선 총이 들렸고
내 스무 살 손에는
군사독재와 계급체제를 무너뜨릴
화염병과 팜플렛이 들렸었다
스무 살, 지금 네 손에는 무엇이 들렸는가.'
박노해 <스무 살의 역사>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스물 세 살, 지금 내 손에는 무엇이 들렸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결론은 사회 문제에 수동적인 나의 태도에 대한 스스로의 자괴감과 반성의 연속이다. 김영훈 위원장의 말에서처럼 지성의 성장이 이뤄져야 할 대학에서 나는 무엇을 손에 들었는가. 봄이 오지 않을 것이란 절망적인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오지 않는 봄’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니었는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반값등록금 릴레이 시위-15일]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정오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날씨 때문인가. 하루 종일 자괴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코를 훌쩍이며 편의점에서 캔커피 한 잔을 사서 손에 들고 광화문 광장을 걸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바라는 ‘1960’년의 모습은 어떤지, 그들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있는지 말이다. 광화문 광장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안 깨달았다. 반값 등록금 시위 15일째, 젊은이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자유의 봄은 이미 내 마음에 성큼 찾아와 있었다는 것을.

한민정/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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