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승산… 정부·군의 ‘대북 정보시계’는 지금 몇 시

2012.01.31 19:56 입력 2012.02.01 02:16 수정
글 박성진 http://mustory.khan.kr

누가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벌써 10년도 넘은 2000년에 벌어진 일입니다. 휴대전화 벨이 울려 받았더니 다짜고짜 욕설과 협박성 발언을 퍼붓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저는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집단휴진에 나선 의사 집단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전화 욕설은 이에 대한 일종의 ‘전화 테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모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저의 전화는 당시로서는 상용되지 않은 송신자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제 휴대전화에는 통신회사에서 연구원 등을 포함해 극소수에게만 시험용으로 내준 번호 확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전화 건 사람의 번호를 확인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점잖았습니다. 방금 전 욕설을 퍼부은 사람의 목소리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여보세요. 방금 통화했던 아무개 기자입니다. 한번 만납시다. 언제가 좋을까요.” 그는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했습니까”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말할 필요 없겠지요. 상대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이미 전의를 잃고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연출한 힘은 ‘정보’였습니다. 저는 상대의 전화번호 하나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보가 10개 이상 노출된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것입니다.

정보의 힘은 그만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큽니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남쪽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남측에서 훨씬 많이 북쪽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준동하지 못합니다.

그 힘은 정보자산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북한 정보에 훤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MB 정부는 국방비를 과도하게 투자하기보다 돈독한 한·미관계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고고도 정찰기인 글로벌 호크 판매 제안을 거절했습니다(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미국이 우리 측의 구매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정권 말기에 뒤늦게 글로벌 호크를 사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호크 가격이 두 배로 뛰어, 방위사업청은 대안으로 팬텀 아이나 글로벌 옵서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고고도 정찰기 같은 정보자산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갈팡질팡하고, 북한에 대한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능력도 시원찮은 것 같아 답답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일각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이 남한의 42분의 1에 불과한 북한에 과도한 공포를 드러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북한 GDP는 남한의 42분의 1 수준인 24조5970억원입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알 수 있고, 북이 어떤 도발을 하든 겹겹의 대비책을 만들어놓고 있다면 남북 교류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 수뇌부는 ‘북한군 특이 동향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연평도 포격과 같은 기습도발 후에는 ‘북한군이 설마 그렇게까지 나올지 몰랐다’는 대답을 국회에서 했습니다.

몇 년 전 북한이 핵실험을 한 날 아침 군 최고 정보책임자인 국방정보본부장(중장)이 군 골프장에 버젓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거죠. 그는 나중에 별을 하나 더 달고 육군참모총장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군은 강경한 응징만이 최고의 해결책인 것처럼 말합니다. 과연 무엇이 바른 해법일까요.

■ 글 박성진
■ 블로그 주소 http://mustory.khan.kr
글쓴이는 경향신문 전국부장으로, ‘박성진의 軍이야기’ 블로그를 통해 깊이와 재미를 겸한 군·국방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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