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는 시위

2012.02.01 21:22 입력 2012.02.22 21:23 수정

‘벗는 시위’가 요즘 전 세계적 추세인 모양이다. 폭설 내린 다보스에서 세 명의 우크라이나 여성은 가슴을 드러내고 세계경제포럼(WEF)의 밀담을 비난했다.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는 지지자들과 함께 찍은 누드사진을 공개했다.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중국 당국에 대한 항의였다. 이집트에서도 최근 한 여성 블로거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누드사진을 게재해 무슬림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벗는 시위’의 고전 반열에 오른 단체로는 페타(PETA)를 꼽을 수 있다. 파멜라 앤더슨 같은 유명 여배우의 멋진 누드사진에 ‘모피를 입느니 벗겠다’ 같은 글귀를 곁들인 포스터를 수년 전부터 발표해왔다.

벗으면 확실히 눈길을 끌기는 한다. 미디어에서도 시위 사진과 영상을 곧잘 소개한다. 하지만 누드 시위가 성공하는 데는 중요한 조건이 있다. 평소 옷으로 가렸던 신체를 공공장소에서 공개하는 충격 요법에 걸맞은 강력한 메시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퀸스대학의 빈센트 모스코 명예교수는 “군중들이 시위자들이 옷을 벗은 이유를 이해하고 이들의 주장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도록 할 때 ‘누드 시위’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지적한다. 자칫하면 충격적 시각의 쓰나미에 휩쓸려 의도했던 메시지까지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 때로는 시위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진다. 러시아 ‘푸틴의 군대’가 그랬다. 젊은 여성들이 흰 티셔츠에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지지하는 문구를 립스틱으로 쓴 뒤 앞섬을 쫙쫙 찢는 캠페인을 벌였을 때 ‘섹스를 동원한 정치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적잖았다.

누드는 아니지만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사진은 그런 맥락에서 처음부터 위태로웠다. 복역 중인 남성 정치인을 지지하는 메시지는 절반쯤 노출한 젊은 여성의 가슴에 실어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낼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위를 완성시키는 수용자들의 해석단계에서 일이 뒤틀렸다. 시위를 독려한 나꼼수 관계자들부터 “성욕감퇴제” “코피 터진다” 같은 발언을 내놨다.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야한 사진 퍼레이드’로 변질됐다. 만약 유럽국가에서 시민단체 남성회원들이 나꼼수와 같은 시위를 여성들에게 권유한 뒤 같은 감상평을 내놨다면 어땠을까. 시위의 수단으로, 또 관음의 대상으로 여성의 몸을 이용했다며 단체에서 한바탕 사달이 날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회원으로 여긴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일부 나꼼수 청취자들은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따진다’ ‘원래 B급방송인데 기대가 과도하다’며 불만도 제기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여성 아이돌 가수의 섹시한 몸매 품평과 개그우먼의 못생긴 얼굴을 비하하는 발언이 일상적인 성차별적이고 외모지상주의적인 사회에서 이 같은 사건은 특이하거나 예외적이지 않다. 그저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이던 일이 나꼼수를 통해 문제화된 수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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