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 중재 나선 터키의 역할

2012.04.01 21:03
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곧바로 이란으로 날아가 3월29일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만났다. 서울에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연이어 만나 시리아 사태 해결과 이란 핵문제 해법을 두고 심도 있는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여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대의 성과는 이란 최고 지도자가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는 시아파 최고 성직자로서 이슬람의 율법에 위배되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반대입장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밝힌 셈이다. 물론 서구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이란 최고지도자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들먹이겠지만, 마치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핵시설 폭격을 주장해 온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모한 군사위협은 상당부분 설득력을 잃게 됐다.

에르도안 총리가 회담 후 가진 회견에서 “이란의 평화적인 핵주권은 존중돼야 하고, 어떤 외부의 군사공격에도 반대한다”고 밝힌 점은 이러한 이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조하고 있는 이중 잣대로부터 국제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정직한 입장을 취해 줄 것을 주문했다. 핵무기 보유국의 입장만이 아닌 모든 국가가 공평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평화적인 핵주권은 보호받고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모처럼 책임있는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에르도안 총리는 나아가 이란 핵문제를 풀기 위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5개국과 이란이 참여하는 P+1회의를 터키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국제칼럼]중동사태 중재 나선 터키의 역할

사실 이웃 국가인 이란과 터키는 전통적으로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터키 세속정부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강하게 비난해 왔고, 이슬람 급진주의 사상이 침투할까봐 노심초사해 왔다. 최근에는 터키에 설치된 나토(NATO) 레이더 방어 시스템 문제와 시리아사태 해결 방식을 놓고 이란과 첨예하게 갈등을 빚어왔다. 이란은 미국이 설치한 레이더가 이란의 동향을 감시하고 자국을 위협세력으로 겨냥한다는 강한 우려를 터키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터키는 레이더 정보가 적국인 이스라엘에 넘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레이더 방어 시스템운용에 터키 군 관계자가 참여해 이란을 적대적 목표로 삼을 때, 이 시설을 봉쇄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란을 안심시켰다. 파격적인 외교행보였다.

한편 시리아 문제에서는 아사드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이란에 맞서 터키는 이미 9000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을 자초한 아사드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보다 민주적인 정권을 창출하자고 이란을 압박했다. 외세의 간섭배제에는 터키도 동의했지만, 이란은 반군지역에서 정부군을 철수시키되 아사드 정권은 계속 인정한다는 유엔방식의 해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시리아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이란-터키의 긴밀한 공동보조를 협의하고, 4월1일에는 전 세계 74개국 지도자들을 초청, 시리아 평화정착 회의를 소집했다. 서구 주도의 일방적 시리아 압박과는 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동분쟁의 적극적인 조정자로서 에르도안 총리의 국내적 지지기반도 매우 단단하여 현재 10년째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최근 수술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터키 총리가 보여준 국제문제의 중재자로서의 발빠른 행보와 책임있는 태도는 터키의 실리와 국격을 높이고 있다.

지난주 막을 내린 핵안보정상회의의 최대 성과로 한국이 적극적인 국제문제의 중재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았다는 홍보를 접하면서, 앞으로 우리 외교가 강대국만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균형감각, 미래의 전략적 가치에 바탕을 둔 진정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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