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난다

2012.04.23 21:31 입력 2012.04.24 01:35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세상이 아프다. 그래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프다. 20대 청춘들을 향해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격려를 하기도 하지만, 어디 20대만 아플까. 10대도 아프고, 30대도 아프고, 40대도 아프고 그냥 쭉 모두들 아프다. 그건 세상이 아파서다. 우린 세상이 아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람보다 돈이 세상 주인노릇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픈 게 당연하다. 그런데 노상 아프다, 아프다 타령만 하고 바꾸려 하지 않는다. 뭔가 한번 바꿔 보려 희망을 품었다가 높은 벽에 부닥치면 쉬 포기한다.

어느 고교 농구부 이야기다. 전국대회에 한 번 나가보지 못한 고등학교 농구팀이 있다. 그런데 중학교 최고 테크니션이 농구부에 들어온다. 희망의 싹이 보이지만, 농구는 한 명이 하는 게 아니다. 중학 시절 망나니로 살던 키 큰 빨강머리가 (단지)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농구부에 들어간다. 드리블도 모르고, 슛도 모르던 풋내기지만 농구의 재미를 조금씩 깨달아간다. 중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던 선수 이름은 서태웅이고 풋내기 빨강머리의 이름은 강백호다. 맞다.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만화 <슬램덩크>다.

[별별시선]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난다

서태웅과 강백호 두 명의 신인이 들어온 북산 농구부. 조금씩 분위기가 살아난다. 그런데 중학 MVP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무릎을 다친 뒤 놀던 정대만이 농구부를 찾아와 깽판을 부린다. 농구 코트에 흙발로 구두를 신고 들어오기까지 한다. 피가 튀는 싸움을 한 뒤, 정대만은 울면서 고백한다. “농구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뭔가 하나 이상씩 부족한 이들이 모여 팀을 이룬다. 그리고 이들은 진심으로 농구를 좋아하고, 또 그만큼 경기에 이기고 싶어 한다. 당연하게도 조금씩 기적이 일어난다. 지역예선대회에서 승리하고 전국대회에 나서게 된다.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올라온 전국대회. 그런데 그만 전년도 우승팀인 최강팀 산왕공업고등학교를 2회전에서 만난다. 과연 전년도 우승팀을 이기는 기적이 일어날까? 안타깝게도 경기는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다. 점점 점수 차이가 벌어지고, 선수들은 힘겨워한다. 북산 36점, 산왕공업 60점. 정말 포기하고 싶은 점수다. 어차피 전국대회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기적을 이루었으니까. 그 순간! 모 패스트푸드 캐릭터를 닮은 뚱뚱한 감독님은 우리의 주인공 강백호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혼잣말로, 하지만 강백호에게 또렷하게 들리게 중얼거린다.

“나뿐인가?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러자 강백호가 묻는다.

“포기한 거 아니에요? 영감님?”

감독님은 안경을 올리며 말한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경기 종료예요.”

그리고 감독님은 강백호에게 리바운드를 책임지라고 말하고, 코트로 보낸다. 36 대 60.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시골 농구팀과 전년도 전국대회 우승팀. 이건 객관적으로 도저히 넘지 못할 벽이다. 모두의 바람대로 포기하면 편안해진다. 코트로 돌아간 강백호. 주장인 채치수에게 묻는다. “그런데 얼굴이 그게 뭐야? 설마…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다른 선수들은 점수 차이를 보고 이미 포기한 상태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 농구를 처음 배운 풋내기 강백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빠진 팀원들에게 당당하게 소리친다. “너희들의 나부랭이 같은 바스켓 상식은 내겐 통하지 않아!! 너흰 풋내기니까!! 자, 가자! 얘들아! 죽기 살기로 이 천재를 따라오라구!”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는 대로 경기는 강백호의 리바운드로 흐름이 바뀌어 마침내 북산이 36 대 60의 벽을 뛰어 넘어 역전승에 성공한다.

포기하면 편하다. 하지만 경기의 흐름은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뒤바뀐다. 북산고 농구부의 안 감독님은 강백호에게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었고, 강백호는 감독님의 믿음을 가지고 코트에 돌아와 다른 동료들을 끌어올렸다. 다른 동료들도 모두 강백호의 허무맹랑한 자신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을 이루어냈다.

자, 이제 우리 이야기다. 어린이도 아프고, 청춘도 아프고, 어른도 아프다. 평택도 아프고, 강정도 아프고, 4대강도 아프다. 사람도 산도 바다도, 바위도, 물도 아픈 이 정신 나간 세상과 대결하는 우리 앞에 놓인 점수는 몇 대 몇일까? 36 대 60? 36 대 600? 어차피 그게 뭐가 중요할까. 포기하면 그 순간이 경기 종료다. 우리는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왼손은 거들 뿐이고, 나는 천재다. 누군가 내 삶을 위로해 주려고 다가오면, 그에게 말하라.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난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이 영광의 순간이다. 지금 아픈 당신,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당신! 지금이 바로 영광의 순간이다. 게임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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