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필코 기억해내며 손을 잡는 법

2012.04.30 21:21
변영주 | 영화감독

서울 덕수궁의 대한문 앞에는 분향소가 있다. 쌍용자동차 22번째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스물 두 명의 해고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였고, 그것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 사람들에게 용역과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되었다.

자신의 삶을 버림으로써 자존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청구라는 회사의 태도는 해고된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끊임없이 밀어냈다. 적어도 서울 한복판의 대한문 앞이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49재까지라도 그 분향소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게 2012년 봄이 지나가고 있다.

[별별시선]기필코 기억해내며 손을 잡는 법

혜화동에는 재능교육의 농성장이, 그리고 지금 한창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열기가 가득할 전주 국제 영화제의 거리 곳곳에는 장기화되고 있는 전북 버스파업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고,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그렇게 전국에는 해고되거나 비정규 문제로 직장환경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힘겨운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 불안정한 고용의 문제는 부당한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 보호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더욱 확산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써본다. 스물 두 명의 목숨이다. 2008년 서울시청 앞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문화제가 한창이던 그때, 그러니까 소위 대통령이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던 그때, 기륭전자의 해고된 노동자들과 함께 문화제를 준비하며 나는 이 문제와 처음 대면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문제가 결국 청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약 사회에 어떤 강한 안전막이 있어서 적어도 그 직장이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안정적이고 해고 등의 폭력적인 변화를 막을 장치가 있다면 청년들은 지금보다 더 신나고 비타협적인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더더욱 이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이 적어도 지옥은 아니어야 극장에도 가고 영화도 볼 것 아닌가 말이다.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모인 영화인들이 영도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경찰의 터무니없는 방해로 사람들은 흩어졌지만 그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내년에 제 영화가 개봉된다면 시사회에 꼭 오셨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웃음으로 답을 했지만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얼마 뒤, 나에게 기륭과 김진숙을 소개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 송경동 시인도 구속되었다.

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두 명의 친구가 모두 극장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의 힘으로 김진숙은 크레인에서 내려왔고 송경동은 세상 안으로 돌아왔다. 송경동은 서울에서, 김진숙은 부산에서 내 영화의 시사회에 와주었다. 꿈같은 순간이었다. 그들이 극장으로 올 수 없었던 이유도 어떤 사람들 때문이었지만 그들을 다시 불러준 것도 결국 사람들의 힘이었다. 그 힘을 더욱 모아야 할 때가 왔다.

봄이다. 이 봄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이제 벼랑 끝에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친구들의 손을 잡을 때가 되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무엇보다 농성장을 한번 가보시는 것은 어떨까? 대한문 앞의 분향소에 한번 와보시는 것은 어떨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불안한 고용환경 안에서 하늘에서 무작위로 떨어지는 벽돌에 맞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며 눈치나 보다가, 그나마 안전했던 오늘 하루를 고마워하며 지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를 위해서다. 장기간의 해고상태, 그로 인한 경제적 문제, 용역의 폭력에 멍든 마음 등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쌍차 ‘와락’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방법이다.(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모든 곳의 연락처 등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일요일,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상도동에서 점심식사를 하시는 것은 어떨까? 상도역 1번 출구를 나서면 ‘상도실내포장마차’라는 조그만 술집이 있다. 이곳은 일요일이 되면 희망식당이라는 이름의 맛집으로 변신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부인이 하는 술집에서 역시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주방장이 음식을 하고 많은 분들이 그를 돕고 있다.

밥 한끼를 먹으며 당신은 바로 지금 봄을 즐기는 일을 세상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렇게 손을 잡으면 된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막힌 공간에서 나오며 시사회에 올 수 있었듯 결국 그렇게 손을 잡으면 우리는 우리의 평등한 안전망을 설치할 수 있다. 그렇게 손을 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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