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 기념작 오페라 ‘카르멘’

2012.10.17 21:23 입력 2012.10.18 00:22 수정
문학수 선임기자

생동감 넘친 카르멘, 섬세한 돈 호세

카르멘과 돈 호세의 연기가 빛났다. 미국 태생의 성악가 케이트 올드리치는 메조소프라노로서는 약간 높은 음역을 지녔다. 팜므 파탈의 대명사로 불리는 여주인공 카르멘에 매우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수차례 카르멘을 연기하며 호평을 들었던 성악가답게 연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또 한명의 주인공인 테너 장 피에르 퓌흐랑은 비음이 다분히 섞인 탓에 프랑스 성악가임을 단박에 드러냈다. 힘이 넘치는 성량은 아니었지만, 객석의 뒤쪽까지 충분히 전달되는 ‘직진형 소리’를 구사했다. 아울러 그는 남자주인공 돈 호세의 극중 캐릭터를 세심한 부분까지 묘사해낼 줄 아는 ‘배우형 성악가’였다.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50주년 기념작으로 오페라 <카르멘>의 막을 올린다. 18일부터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은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카르멘>을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 제공

무대는 절충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오페라 <카르멘>의 실제 배경인 스페인 세비야의 담배공장과 성당, 투우장 등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동시에,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조명으로 표현주의적 분위기를 가미했다. 이 ‘모순된 절충’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 이날 공개된 <카르멘>의 무대는 합격점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주연을 맡은 두 성악가의 호연과 더불어, 1막부터 3막까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펼쳐지는 무대미술도 이번에 공연되는 <카르멘>의 장점으로 손꼽힐 만하다.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운 색조의 무대였지만, 빛과 그림자가 적절히 어울리면서 관객의 집중을 효과적으로 이끌었다. 흰색과 검은색을 주조로 한 성악가들의 의상 속에서 카르멘의 ‘붉은 꽃’은 유난히 돋보였다.

모든 오페라에서 노래만큼 중요한 게 연기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1막의 무대인 왁자지껄한 세비야 광장. 카르멘은 거칠디 거친 여자였다. 카르멘 역의 케이트 올드리치는 ‘여자 깡패’나 다름없는 모습을 퍽이나 자연스럽게 묘사해 그의 본래 성품을 의심케할 정도였다. 그는 요염함과 천박함이 뒤섞인 연기를 구사하면서 돈 호세를 쥐락펴락 갖고 놀았다. 하지만 2막에서 “무엇보다 황홀한 것은 자유”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좀더 신념이 담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반면에 3막에서 보여준 저음(低音)은 매혹적이었다. 질투에 눈 먼 돈 호세에게 결국 살해당할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면서 “죽음을!”이라고 노래하는 장면은 절절했다. 카르멘은 그렇게, 자유를 추구하는 동시에 운명론자의 모습을 지닌 ‘자기 모순’의 캐릭터다.

카르멘의 성격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일관성을 보이는 반면, 돈 호세는 매우 복집한 내면을 넘나들면서 변화하는 성격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다. 이날의 프리뷰 공연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돈 호세 역의 장 피에르 퓌흐랑이 보여준 섬세한 연기였다.

1막에서 카르멘의 수갑을 풀어주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나를 사랑해주겠소?”라고 묻는 장면, 탈출한 카르멘을 찾아와 완전히 사랑에 빠진 남자의 열정을 보여주는 2막의 절창, 마지막으로 질투에 눈이 멀어 카르멘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장면까지, 돈 호세는 소심함과 도덕적 체면, 열정과 분노, 질투 등의 감정선을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카르멘에게서 좀더 매혹적인 여성성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약간의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프랑스의 연출가 폴 에밀 푸흐니는 세비야 광장에 30명의 군인들과 역시 30명의 담배공장 여공들, 게다가 30명의 어린이들까지 등장시키는 ‘인해전술’을 구사했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가장 답답했던 것은 일부 국내 성악가들의 연기력 난조였다. ‘노래는 잘하지만 연기력은 저조하다’는 기존의 평가를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주최 측이 밝힌 이번 공연의 제작비는 약 12억원. 적지 않은 비용이다. 4일만 공연하고 막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좀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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