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세상 속으로’

공무원들 구제역 소리만 들어도 경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2013.03.01 21:23 입력 2013.03.01 21:32 수정

2010~2011년 구제역 사태 때 파주 방역팀장으로 투입된 이병직씨

“특히 수의직 공무원들은 격무와 살처분 스트레스로 극심한 후유증”

2010~2011년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사태는 현장에서 뛰어다녔던 공무원들에게 지나간 일이면서 여전히 생활 속에 남아 있는 고통이었다. 지난달 28일 경기 문산읍사무소에서 만난 이병직씨(48·사진)는 구제역 얘기를 꺼내자 “다시 떠올리기 싫은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읍사무소에서 총무팀장으로 일하는 그는 2년 전 파주시 가축방역팀장으로 ‘구제역 전쟁’의 최일선에 있었다. 이 팀장은 “그때는 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되고, 얼른 벗어날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면서 “아직도 잠자다가 다시 구제역이 일어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악몽을 꾸곤 한다”고 털어놨다.

■ 현장 투입 공무원 과로사에 중상, 유산까지

[탐사보도 ‘세상 속으로’]공무원들 구제역 소리만 들어도 경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당시 구제역 사태는 전국적인 일이었다. 공무원 10명이 과로사했고 사고로 중상을 입은 사람도 150명이 넘었다. 경북에서는 임신 중인 공무원이 유산을 겪는 일이 벌어졌다. 파주에서는 매몰 현장이 붕괴돼 토사에 깔린 공무원 한명이 갈비뼈와 골반에 큰 부상을 입은 일이 있었고, 방역 작업을 다니다 교통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된 경우도 있었다. 이 팀장은 “당시 돼지들을 살처분하던 매몰 현장에 떨어진 파주시 공무원은 3~4개월간 입원해 있었다”며 “아직도 그날의 끔찍한 얘기는 아예 꺼내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사태 발생 초기 파주시에서는 하루 20개소에서 살처분이 진행됐고 매몰현장마다 15명씩 투입됐다. 매일 300명의 공무원과 군인이나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투입된 셈이다. 구제역 통제를 위해 파주 내에서만 총 50여개 초소가 운영됐다. 서울보다 기온이 평균 5~10도 낮은 파주에서 겨울철에 장기간 격무를 수행하면서 공무원들의 심적 고통과 피로도는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팀장은 “구제역 바이러스는 날씨가 추울수록 오히려 기승을 부리는데 장비는 얼어서 못 쓰게 되고 소독액도 얼어버리는 통에 작업이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소의 경우 원래는 안락사를 시키도록 되어있는데 안락사에 사용되는 약물이 전국적으로 다 떨어지면서 도축장 인부를 불러다 특수총으로 소의 정수리를 타격해 죽였다”며 “ ‘정말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구제역 사태는 너무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며 “공무원들로서는 구제역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일을 겪은 공무원들끼리 술 마시면 가끔 얘기가 나오긴 하는데 누군가 바로 말을 끊게 된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구제역이 발생한 인천 강화군 선원면의 한 축산농가에서 방역요원들이 소들을 살처분한 후 중장비를 동원해 매몰작업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4월 구제역이 발생한 인천 강화군 선원면의 한 축산농가에서 방역요원들이 소들을 살처분한 후 중장비를 동원해 매몰작업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탐사보도 ‘세상 속으로’]공무원들 구제역 소리만 들어도 경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 주변 오해 살까 정신치료 못 받고 상처 안고 살아

이 팀장은 “주변에서 오해를 살까 싶어 정신 검사나 치료까지 받은 사람은 없지만, 아직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상담이 필요한 공무원들이 많다”며 “국가와 경기도가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공무원들에게 조치해줘야 하는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음이 여리고, 비위가 약한 이들은 현장에 들어가기 무척 힘들어했으나 공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다들 정신적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기 싫거나 승진 등 인사에서 피해를 입을까봐 내색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팀장은 “특히 수의직 공무원들의 업무가 과중하고, 고통도 컸다”며 “당시 구제역 사태를 겪으면서 파주를 비롯해 경기도 지역의 수의직 공무원 10여명이 사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을 살리는 업무를 맡아야 하는 수의직 공무원들이 동물을 생매장하는 살처분을 도우며 겪는 심리적 고통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방역 관련 부서가 지금은 공무원들에게 있어 기피부서 1순위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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