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2013.07.17 21:56
문학수 선임기자

국가가 너를 갱생시키리라, 강제로

이 연극은 ‘박정근’이라는 인물에서 출발한다. 2012년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트위터로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돼 2심에서 징역 2년을 구형받은 사람이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지하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 들어서는 순간, 무대에 배우는 한 명도 없고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 실제 인물 박정근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항소심을 눈앞에 둔 그가 연기 지도를 받는 황당한 장면이다. 박정근의 맞은편에는 연출가일 수도 있고 배우일 수도 있는 익명의 인물이 앉아 있는데, 그가 박정근에게 이렇게 말한다. “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단어에 좀 더 진심을 담아봐요. 마음은 몸을 따라간다구. 자꾸 연습해 자꾸!”

배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9명의 배우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객석이다. 관객 속에 섞여 앉은 배우들은 모두 붉은색 옷을 입었다. 그들이 입을 모아 스크린 속 박정근의 대사를 외친다. 이 연극은 그렇게 ‘박정근 되기’의 상황을 연출한다.

[객석에서]연극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나=박정근’에게 법률과 제도가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인간으로의 전향’일 것. 연출가 윤한솔은 그 용어를 ‘갱생’으로 바꿨다. 그것이 ‘전향’보다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특정한 정치적 사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적게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는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옭죄는 자물쇠라는 암시다.

객석의 배우들, 다시 말해 9명의 빨갱이들에게는 ‘갱생 핸드북’이 숙제로 주어진다. 핸드북이 요구하는 과제는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소 보내기, 그들에게 말 건네기, 걸인과 노숙자들에게 담배나 빵, 우유 등을 나눠주기다. 그러다보면 ‘착한 사람’으로 갱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물론 연출가 윤한솔의 능청스러운 블랙 유머다.

크게 보자면 연극은 두 개의 축으로 흘러간다. 하나는 박정근이 연기를 배우면서 최후진술을 준비하는 과정, 또 하나는 9명의 배우들이 날마다 갱생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이다. 배우들은 실제로 거리를 쏘다니면서 자신의 과제를 수행한다. 그리고 관객 속에 섞여 앉은 채, 그날 자신에게 실제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연극이 현실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를 독특한 형식으로 보여주는 문제작.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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