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유일하게 세 번 읽은 소설

2014.02.04 21:39 입력 2014.02.05 09:57 수정
이어령 | 전 문화부 장관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내가 세 번 읽은 유일한 소설이다. 중학생 때 형들이 읽다 만 일본어판으로 처음 읽었다. 난봉꾼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일지 생각하면서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듯 읽었다. 대학 시절에는 영문판으로 한 번 더 읽었다. 이 소설의 주된 테마가 부친 살해와 형제 간 갈등이다. 그 무렵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던 나는 타자와의 싸움보다 피를 나눈 가족·형제 간의 싸움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는데, 그런 감정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게 만든 힘이었다.

[이어령의 내 인생의 책](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유일하게 세 번 읽은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각각 제정에서 근대 러시아로 이행하는 과도기 러시아의 세 측면을 반영하는 인물들이다. 20대의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개혁적이고 지적인 이반이었다.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한 그의 비판정신이 내게 어떤 해답을 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세 번째로 읽은 것은 지난해였다. 내가 기독교에 귀화한 이후의 독서였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신앙의 길을 걷는 알료샤를 중심에 놓고 읽었다. 세 번째 독서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성과 영성은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성은 의문에서 나오고 영성은 감동에서 나온다. 지성적 회의에서 생겨나는 고통을 해결하려는 마음이 영성을 찾게 만든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위대한 도그마가 아니라 작은 소망과 희망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이반에 심취한 무신론자였던 내가 알료샤를 이해하게 된 과정이 나만의 정신적 궤적은 아닐 것이다. 절망에서 벗어나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언어를 찾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보편적인 울림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죽지 않는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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