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잔혹 살인범… 너, 공공의 적 잡고야 말겠다 꼭!

2017.12.01 17:24 입력 2017.12.01 17:44 수정
김경옥 프로파일러

시리즈를 마치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범인에 대해 분석한다
하지만 범죄로 인한 불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범죄 앤 더 시티]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잔혹 살인범… 너, 공공의 적 잡고야 말겠다 꼭!

2004년, 나는 TV 뉴스 속보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야산에서 수많은 경찰들이 분주히 오가며 현장을 조사하고 있었고 CSI 과학수사요원들이 땅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감식을 벌이고 있었다.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검거된 것이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검거되면서 그가 살해·유기한 피해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이었다. 이는 연쇄살인과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각인시킨 첫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5년, 프로파일러로 재직 중이던 당시 새벽에 발생한 사건으로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한 주택이 화염에 휩싸여 타오르고, 소방관들은 불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불은 아침이 밝아오고 한참 후에야 진화되었다. 불길이 잡히자 현장감식요원들이 감식을 시작했다. 밖은 환했건만 온통 그을음과 재로 뒤덮인 집 안은 어두컴컴하고 참혹하기만 했다.

집 안에서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미처 탈출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연기에 질식하여 끝내 생을 달리한 것이다. 하지만 사망 원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타살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거실에서는 인위적으로 불을 낸 흔적도 발견되었다. 살인사건이었다. 철저한 감식과 분석이 이루어졌다. 원한, 복수, 치정, 금전…. 모든 사건은 동기를 갖는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동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이런 경우 피해자 주변인 수사에서 해결의 단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기가 불분명한 사건은 복잡해진다. 이 사건은 현장 상황만으로 명확한 동기를 추정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범인이 현장에 불을 내서 증거까지 사라져 단서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온 가족이 잠들어 있는 주택에 침입하여 살인을 하고 심지어 거실에 불까지 낸 뒤 유유히 사라진 범인. 범인은 매우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했으며 침착했다.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였다.

두 달 후 또다시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 방식은 똑같았다. 거실 베란다 창문으로 침입한 범인은 온 가족이 자고 있던 집 안에서 아이들을 살해하고 거실에 불을 지른 뒤 도주하였다. 두 달 전 발생한 사건과의 연관성은 분명했다. 연쇄살인범들의 범행 수법은 사건이 거듭될수록 점점 진화하지만 변화하지 않고 유지되는 패턴 또한 보인다. 이러한 일관성을 분석하여 여러 미제사건들을 연쇄 범죄로 묶을 수 있다. 당시 서울에는 약 1년 전부터 ‘서남부 연쇄살인’으로 일컬어졌던 여러 살인사건들이 발생한 터였다. 서남부 연쇄살인이 발생한 지 수개월 후, 서울에서 다시 연쇄살인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사건. 이 사건은 서남부 살인사건과 동일 범인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출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들의 범인은 연쇄살인범 정남규였다.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을 살해하고 20여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유영철의 범행은 2003년부터 2004년 7월이었으므로, 시기를 분석해보면 2004년 초 서울에는 두 명의 연쇄살인범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 명은 서울 중심부에서, 다른 한 명은 서울 외곽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2004년 1월부터 5월까지 정남규는 약 12건의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주기가 매우 짧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정남규는 왜 범행을 멈추었을까. 잠복기 후 그는 새로운 수법으로 살인을 시작한다.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행 수법은 심야 혹은 새벽 시간대에 노상에서 혼자 귀가하거나 걸어가는 여성의 뒤를 쫓아가 칼로 찔러 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사건들은 완전히 달랐다. 창문이 열려 있어 침입이 용이한 주택을 선택했다. 주거침입 방식은 노상에서보다 목격될 가능성을 낮춰준다는 이점이 있지만, 집 안에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고 자신이 제압하기 어려운 상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범인은 목격 가능성을 낮추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발적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제3자에 의한 목격 가능성을 더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범행 도구는 날카로운 흉기에서 둔기로 바뀌었고 방화가 추가되었다. 살인의 목적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보다 철저히 없애려는 시도였다. 이전보다 범인은 더 대담해졌고 적극적이었으며 높은 계획성을 보였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을까.

범행의 공백기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유영철의 검거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쇄살인범들은 하나의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범죄에 대한 충동이 일어나 또다시 범행하게 되는데, 이를 ‘심리적 냉각기’라고 한다. 이들에게 범죄는 만족을 느끼게 하는 자극제와 같아서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범행을 그만두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은 검거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범행을 지속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다. 자신을 감추며 새로운 수법을 연구하고 다시 시작할 때를 기다릴 정도의 교활함이 연쇄살인범들에게는 있다. 유영철의 검거로 불안함을 느낀 정남규는 범행을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욕구마저 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범죄를 준비했다. 범죄자들은 범죄를 연구한다. 이들에게는 완전범죄가 목표이다. 정남규는 완전범죄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체력을 관리하고 범죄를 연구했다. 늦은 밤까지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도주하기 위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달리기를 하고 담배와 술을 멀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범죄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지 않았다. 결국 정남규는 검거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10년도 더 지난 일들을 들추어 끔찍했던 기억을 왜 떠올리게 하는지 내심 못마땅한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즐겁고 행복한 일은 금방 잊어버리면서도 좋지 않았던 일에 대한 기억은 언제까지라도 선명하게 떠오르니 말이다. 아마 이 글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마지막 글을 고민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얼마나 안전한가, 아니 얼마나 안전해졌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연쇄살인범들이 떠올랐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잔인한 범죄들을 겪어 왔다. 2007년 두 어린아이를 납치하여 살해한 혜진이·예슬이 사건, 2006년에서 2007년까지 7명의 여성을 연쇄 살인한 강호순 사건, 2008년 8세 여아를 납치하여 강간한 조두순 사건, 2010년 여중생을 납치하여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 최근 발생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까지 잔혹한 사건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범죄의 발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범죄가 고도로 지능화되고 잔인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나타날 범죄들이 우려스럽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 범인에 대해 분석한다. 하지만 범죄로 인한 불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 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이후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평생 동안 지니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에 견주어 볼 때, 범죄 대책에 대한 관심과 정책 마련은 상대적으로 미약하지 않은가 싶다. 사회가 고도로 성장할수록 사회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분노하는 개인들은 많아진다. 불안, 좌절, 상대적 박탈감, 스트레스, 분노와 같은 부정적 심리는 언제든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범죄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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