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하늘엔 지옥이 떠 있었네

2021.07.08 14:34 입력 2021.07.08 21:22 수정

“신념을 다하리라 자유를 위해, 싸우며 지키리라 평화를 위해.”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의 부대가(노래)다. 가사와 달리 제20전투비행단엔 자유도, 평화도 없었다.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이모 중사가 이곳에서 피해를 입었다. 이 비행단은 2018년 최모 일병, 2019년 김모 하사 등 다른 청년들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갔다. 공군에서 군생활을 했던 한 취재원은 “다른 부대의 사고 소식도 얘기가 다 도는데, 제20전투비행단이 유달리 사고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우리의 하늘에 우리가 모르는 지옥이 떠 있었다.

경향신문은 2019년 이 비행단에서 부조리를 견디다가 세상을 떠난 김 하사의 사건 수사기록 1600장 전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수사기록엔 김 하사가 당한 부조리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과도한 질책, 절차를 어긴 휴가 통제, 외모 비하…. 최 일병과 이 중사 관련 자료도 들여다봤다. 공군의 병영 문화는 나름 선진적인 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부조리의 온상이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헌병과 군 검찰의 수사 결론이었다. 디지털포렌식, 학교생활기록부, 30여명에 이르는 참고인 진술 등 모든 정황이 군 복무 중 겪은 스트레스가 김 하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이라고 가리켰다. 군 수사기관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군은 “사망이 범죄로 인해 발생하지 않았음이 판명됐다”며 단순 변사사건으로 종결했다. 형사처벌은 물론 경징계조차 없었다. 최 일병 사건에서도 군은 “잦은 질책 및 언어폭력으로 힘들어 한 상태에서 스트레스,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소위 한 명에게 200만원의 벌금형만 선고했다.

그러는 동안 유족들의 아픈 시간만 켜켜이 쌓였다. 이 중사의 유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안치실에 잠든 이 중사의 옆자리에는 최 일병이 3년째 누워 있다. 김 하사의 아버지는 지난달 이 중사 유족이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 중사의 유족과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충청도에서 무턱대고 올라왔다.

“사람들은 ‘내 자식이 군대 가서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잘 못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니 군대 사고와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최 일병의 어머니가 독자들에게 꼭 전해달라며 한 말이다. 군대의 면죄부식 수사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 하사, 이 중사가 나올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처한 이 위험을, 정상적인 국가라면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기자메모]파아란 하늘엔 지옥이 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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