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일상성

2021.07.31 03:00 입력 2021.07.31 03:01 수정

메리암 베나니, 오리언 바키, 2 Lizards, 2020, 단채널 비디오, 22:26min ⓒ Meriem Bennani and Orian Barki

메리암 베나니, 오리언 바키, 2 Lizards, 2020, 단채널 비디오, 22:26min ⓒ Meriem Bennani and Orian Barki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감금 상태를 즐기고 있어.” 아무 계획이나 약속도 없고,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좋다는 도마뱀을 향해 다른 도마뱀이 말했다. “격리 1주차에 할 법한 말이네요.”

2020년 3월과 4월, 뉴욕시에 봉쇄령이 떨어진 시기, 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장소에 발이 묶였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 메리엄 베나니와 영화제작자 오리언 바키는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격리의 시간을 도마뱀 두 마리가 펼치는 8개의 에피소드로 제작해 인스타그램에 짧은 비디오로 공개했다.

한 쌍의 파충류는 팬데믹이 전개되는 혼란스러운 현실의 연대기를 지난다. 뉴욕의 영상과 3D애니메이션을 조합하여 제작한 각 3분 분량의 에피소드는 옥상의 아지트, 줌 미팅, 연인과의 데이트처럼 격리생활 중에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그 안에서 인종차별 같은 현실의 불합리한 장면에 대한 냉소, 현실감을 가질 수 없는 격리의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불안함, 저항감, 현기증, 권태 같은 심리상태가 농담인 듯 진심인 듯 삐져나온다.

MoMA의 큐레이터 마사 조지프는 “위기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것을 항해하는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과정”이라고 말한 로렌 벌란트를 언급하며, 팬데믹을 예외적인 재난으로 다루기보다 평범한 일상의 일부로 다루는 작가들의 태도에 주목했다.

작가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전염병의 영향력을 보며 더 이상 격리 1주차 때와 같은 순진한 말은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실업자가 되고, 재택근무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면서 이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우리는, 느리게 움직이는 도마뱀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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