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선물’이고 싶었던 영화 ‘해피 뉴 이어’…현실에서 붕 뜬 지루한 선물 아닌가

2021.12.29 16:33

영화 <해피 뉴 이어>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해피 뉴 이어>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해피 뉴 이어>는 연말연시의 아름다운 동화가 될 수 있을까. 29일 개봉한 <해피 뉴 이어>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눈길을 모은 영화다. 14명이 ‘호텔 엠로스’를 배경으로 사랑을 찾아 나간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은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을 연출한 ‘멜로 한길’ 감독이다. <해피 뉴 이어>도 그렇다. 그는 지난 27일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행복함을 가져갔으면 좋겠다”며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로만 구성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곽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매끄럽다. 미운 얼굴이나 감정도, 어떠한 갈등도 없다. 하지만 현실을 보이지 않게 덮어둔다고 해서 좋은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의 아름다움은 못생긴 실제를 외면하고 마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이 경우 이야기는 동화라기보다 현실에서 붕 뜬 환상이나 기만이 되기 쉽다. <해피 뉴 이어>도 개연성으로부터 자꾸 미끄러지는 이야기에 가깝다. 로맨스를 표현하는 방식은 판에 박힌 연출을 따르기 때문에 지루하다.

영화 <해피 뉴 이어> 출연진과 곽재용 감독(맨 오른쪽). CJ ENM 제공

영화 <해피 뉴 이어> 출연진과 곽재용 감독(맨 오른쪽). CJ ENM 제공

현실에서 가장 크게 미끄러져 보이는 건 호텔 엠로스의 사장 용진(이동욱)이다.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짝수 강박증’을 앓는다. 자신이 머무르는 호텔방의 모든 비품들의 갯수가 짝수여야 한다는 식이다. 그는 호텔방에서 청소 중이던 하우스키퍼 이영(원진아)에게 반했다. 두 사람은 거듭되는 우연으로 여기저기서 마주치며 가까워진다.

이영은 비정규직이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만 비정규직 신세라 오디션을 볼 시간을 낼 수가 없다. 용진은 이영의 손을 잡아끌고 오디션장으로 향한다. 오디션장에서 나온 이영은 용진에게 두 사람의 처지가 얼마나 다른지에 관하여 소리친다. 한가로운 짝수 강박증따위를 갖고 살 수 있는 게 왜 사치인지 말한다. 각성한 용진이 강박증으로부터 치유되고, 모든 비정규직 직원의 고용 승계를 발표한다. ‘정규직 전환’이란 선물이 ‘왕자님’의 깨달음 덕분에 베풀어지는, 현실에 없을 판타지처럼 보인다.

영화 <해피 뉴 이어>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해피 뉴 이어>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호텔 직원인 소진(한지민)은 15년째 ‘남사친’ 승효(김영광)와 ‘썸’만 탔다. 대학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누구도 먼저 고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승효가 곧 결혼한다고 말한다. 결혼식 장소는 바로 소진이 일하는 호텔이다. 승효는 소진에게 예비신부 영주(고성희)와 만나달라고 부탁한다. 세 사람이 혼수 준비차 들른 쇼핑몰 직원은 하필 소진과 승효에게 부부냐고 묻는다.

승효가 아직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하지 않아 속상하다는 영주의 이야기를 듣고, 소진은 승효에게 ‘여자들이 싫어하는 프로포즈 방법’을 검색해 귀띔한다. 어렵사리 두 사람의 결혼을 받아들인 소진은 승효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잠시 솔직해지겠다’며 자신의 지나간 마음을 고백한다. 최소 수 분은 걸린 고백 장면이 끝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는 목적층에 도착한다.

공무원 시험에 5년째 떨어진 재용(강하늘)은 여자친구한테 매달리다가 차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마음먹은 뒤 ‘죽기 전 마지막 사치’를 위해 호텔에 투숙한다. 코믹한 연기로 영화의 흐름을 틔우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절박한 청춘의 현실은 아무래도 코믹함과 어우러질 수 없는 것 같다.

영화 <해피 뉴 이어>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해피 뉴 이어>의 한 장면.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이밖에 40년만에 첫사랑이었던 서로를 만난 캐서린(이혜영)과 상규(정진영)의 이야기, 싱어송라이터 이강(서강준)과 헌신적 매니저 상훈(이광수)의 이야기,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직(조준영)과 아영(원지안)의 이야기는 ‘알고 보니 상대방도 날 좋아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돈 잘 버는 성형외과 의사 진호(이진욱)는 매주 토요일 일정한 시각에 선을 보러 나오는데, 알고 보니 거기서 일하는 직원 소진을 보러 온 것이었다는 식이다.

영화 중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 인사,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노래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여러모로 <러브 액추얼리>가 되고 싶었던 흔적이 보인다. 예쁜 연말연시 선물을 만들고 싶었다면, 더 정교하고 짜임새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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