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고 확장하는 나환

2022.01.01 03:00 입력 2022.01.01 03:01 수정

전나환, ‘메이트’ 작업 장면,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160㎝ ⓒ전나환

전나환, ‘메이트’ 작업 장면,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160㎝ ⓒ전나환

글을 쓰는 일은 늘 미래의 독자를 향하는 법이지만, 새해에 도착 예정인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나누고 싶어진다. 반성과 각오를 다지고 싶어진다. 돌아보면, 한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유독 많았던 한 해였다. 시대의 종말은 그 시대를 일군 사람들의 죽음과 함께 온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죽었다. 달라진 시대의 문법을 거부한 채 자신은 세상의 질서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오만하게 굴었던 이들은 사회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반성 없는 자들의 근거 없는 당당함도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게 이런 것이로구나 되뇌는 하루하루가 간다. 세상의 변화는 거대한 존재의 한 걸음이 아니라,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들의 발걸음들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해야, 내 존재의 진실을 속이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당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초상을 그려왔던 전나환의 발걸음은 ‘다름’을 금지하고 혐오하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긴다. 금기, 금지, 혐오가 작동하는 이유는 때때로 터무니없다.

다정한 시선으로 우리의 변화를 독려하던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가 남긴 발자취가 새삼스럽다. 나에게 내일이 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은 채, 인스타그램에서 병상에 누워 있던 그의 모습을 보고, 노트를 읽는다. “삶에 무엇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무엇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의지를 내는 것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 삶의 의지. 살고자 함. 묻고자 함. 그리고자 함. 보여주고자 함. 다시 내일을 상상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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