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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휩쓸고 간 숲, 어떻게 자라나고 있을까…옥계·고성에서 본 울진의 미래

2022.04.04 06:00 입력 2022.04.04 09:19 수정

강원 고성군 죽왕면의 모습. 1996년과 2000년 연달아 산불 피해를 입고 2001년부터 복원이 이뤄진 곳이다. 중앙 임도를 기준으로 좌측은 활엽수들이 자란 자연복원림, 우측은 소나무가 식재된 인공복원림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강원 고성군 죽왕면의 모습. 1996년과 2000년 연달아 산불 피해를 입고 2001년부터 복원이 이뤄진 곳이다. 중앙 임도를 기준으로 좌측은 활엽수들이 자란 자연복원림, 우측은 소나무가 식재된 인공복원림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동해안 지역은 예로부터 산불이 잦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강원 강릉·삼척·양양·간성·고성이 큰 산불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도 동해안 벨트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산불 피해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 것일까. 누가 어떤 나무를 심었고, 새 숲은 얼마나 자랐을까. 지난달 3일 발생해 기록적 피해를 입힌 경북 울진군의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다. 과거 산불 피해지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울진의 미래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다.

산불 피해지는 초기에 검게 타죽은 나무, 화상을 입고 누렇게 말라죽은 나무, 살아남은 나무들이 뒤섞여 얼룩덜룩하다. 죽은 나무를 베어낸 산은 민둥산이 된다. 어린 묘목이 숲을 이루기까지 20~30년이 걸린다. 식목일을 앞두고, 2019년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 강릉 옥계면과 2000년 동해안 산불을 겪은 강원 고성군의 현재 모습을 지난달 31일 둘러봤다.

■강원의 흙빛 옥계…3년 지나도 민둥산 천지

이번에도 산불을 피해가지 못한 옥계면에서는 2000년 이후 네 차례 큰 산불이 났다. 그 중 2019년은 4월 4~5일, 식목일을 끼고 산불이 났다. 3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여전히 민둥산의 외양을 하고 있다. 강원도 특유의 우람한 산세가 흙빛을 띠고 있는 광경이 어색해 보였다. 옥계면 산계리의 한 복원지에 가까이 가니 그제야 어른 허리 높이 정도의 어린 소나무와 활엽수 묘목이 눈에 들어왔다. 활엽수는 주로 참나무과 나무들이다. 사이사이로 생을 다한 소나무 밑동들이 박혀 있었다. 나이테상으로 30~40년은 족히 된 것들이었다.

어린 나무는 잡풀과의 경쟁에서 스스로 이기기가 어렵다. 햇볕이나 양분 경쟁에서 뒤처지면 충분히 성장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풀을 베고 솎아줘야 한다. 소나무는 푸른 잎을 달고 있어 눈에 잘 보이지만 활엽수는 몸통이 가느다랗기 때문에 주변에 베어내야 할 것들과의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활엽수 옆에는 흰색 막대기가 같이 꽂혀 있다. 동행한 신승복 산림청 산림생태복원과 주무관은 “풀을 깎을 때 실수로 쳐내는 경우가 있다”며 “막대기는 ‘여기 나무가 있다’고 알려주는 조림표시봉”이라고 했다.

3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2019년 산불 피해지 모습. 죽은 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어린 묘목들이 심겨 있다. 겉보기에 민둥산의 외양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3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2019년 산불 피해지 모습. 죽은 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어린 묘목들이 심겨 있다. 겉보기에 민둥산의 외양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2019년 산불 피해지의 모습. 검게 탄 소나무 밑동 주위로 3년 된 소나무 묘목과 조림표시봉(어린 활엽수 묘목 주위로 나무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하얀 막대기)이 심어져 있다. 유경선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2019년 산불 피해지의 모습. 검게 탄 소나무 밑동 주위로 3년 된 소나무 묘목과 조림표시봉(어린 활엽수 묘목 주위로 나무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하얀 막대기)이 심어져 있다. 유경선 기자

옥계의 민둥산은 최소 20년은 흘러야 다시 울창한 녹음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그때까지 투입돼야 하는 일손은 끝도 없다. 산림 복원은 나무를 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데 새로 심은 나무를 가꾸지 않으면 좋은 숲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소나무를 솎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지나치게 간격히 촘촘한 소나무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이곳의 묘목을 둘러보며 “훨씬 더 띄엄띄엄 심어도 되는 거리”라고 했다.

2019년 옥계 산불은 그나마 식목일에 발생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외부의 관심이 높은 편이다. 2019년 9월에는 민간기업과 사회적 기업 트리플래닛이 함께 이 지역에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에서 빠르게 멀어져 철저히 ‘지역의 일’로 소외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서 위원은 “지방 고령화 문제는 여기에도 적용된다”며 “숲을 다시 만드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손을 타는 일인데 주민은 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젊은 일손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경제성 ‘인공 복원’ vs 생태성 ‘자연 복원’

2000년 동해안 산불은 울진 산불 이전까지 2만3794㏊가 피해를 본 최악의 재난이었다. 피해 규모가 전무했던 만큼 복원 방법을 놓고 사회적으로 열띤 논의가 벌어졌다.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공동조사단이 77일 동안 피해지를 정밀 조사했고, 이듬해 1월 인공복원과 자연복원을 ‘반반’ 병행하기로 계획이 확정됐다. 1만2372㏊(52%)를 인공복원, 1만1422㏊(48%)를 자연복원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피해를 입은 고성군 죽왕면 야촌리 산을 찾았다. 산불 피해 연구조사지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1996년 산불 이후 복원이 진행되다가 2000년 다시 화마를 맞은 지역이기도 하다. 복원은 2001년부터 다시 진행됐다. 이곳에서 인공복원과 자연복원의 진척도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으로는 소나무숲(인공복원)이, 한쪽으로는 활엽수림(자연복원)이 자라났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언뜻 보기에는 산불 피해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2000년 산불 피해지의 모습.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소나무를 심은 인공복원림, 오른쪽은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은 자연복원림이 조성됐다. 유경선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2000년 산불 피해지의 모습.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소나무를 심은 인공복원림, 오른쪽은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은 자연복원림이 조성됐다. 유경선 기자

강원석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는 인공복원과 자연복원에 대해 “일장일단이 있다”고 했다.

인공복원된 소나무숲에서는 목재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일률적인 산림 관리 측면에서는 효율적이다. 반면 생물종 다양성은 떨어진다. 나무를 베어낸 뒤 다시 심고 관리하는 비용이 많이 투입되기도 한다. 자연복원은 인공복원에 비해 생태적으로 안정적이다. 소나무림에 비해 산불에 덜 취약하다. 그러나 경제적 활용 가치는 떨어진다.

드론으로 두 지역의 복원 정도를 비교해보면 자연복원지에는 중간중간 나무들이 생착하지 못한 ‘구멍’이 존재한다. 토양이 계속 흘러내려서 식물이 안정적으로 자라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강 박사는 “자연복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연적으로 천이(식물 군락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된 숲일수록 입지에 최적화된 식물이 자라나게 되고, 결국 생태적으로 더 건강한 숲이 된다는 논리다. 서재철 전문위원은 “미래에는 생물다양성의 가치가 훨씬 커질 것”이라며 “자연 천이 숲에서 다양성이 더 우수하다”고 했다.

■피해 복원도 ‘합리적 의사결정’ 중요

옥계와 고성 복원지는 울진 산불에 시사점을 준다. 먼저 ‘모니터링’이다. 산불 피해지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나무들은 앞으로 꾸준히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근거법은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생태복원의 원칙으로 모니터링을 제시하고 있다. 산림청도 산림복원 현장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없는 복원 사업은 반쪽짜리 복원에 불과하다”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승복 주무관은 “(나무를 심은 후) 1, 2, 5, 10년차에 의무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초기 5년 동안은 풀베기도 계속 해야 한다. 신 주무관은 “나무의 수세가 풀보다 좋아져서 경쟁우위를 점할 때까지 풀베기를 한다”며 “이후 10년 뒤에는 ‘어린 나무 가꾸기’ 차원에서 수시로 나무들을 확인하고, 이후에는 10년마다 ‘솎아베기’를 해서 숲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속아베기는 30년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30년이 지나고 나면 베어낸 나무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벌목 시기는 나무 종류에 따라 30~100년으로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산림 복원지를 장기간 모니터링한 역사가 없다. 강원석 박사는 “제가 일하는 한 모니터링은 무기한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2000년 산불 피해지 모습. 위는 산불 발생 2개월 뒤인 2000년 6월12일, 아래는 산불 발생 9년 뒤인 2009년 9월25일. 산림청 제공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2000년 산불 피해지 모습. 위는 산불 발생 2개월 뒤인 2000년 6월12일, 아래는 산불 발생 9년 뒤인 2009년 9월25일. 산림청 제공

‘복구’에서 ‘복원’으로 패러다임이 옮겨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는 복구의 관점을 기반으로 일률적인 나무심기가 이뤄졌다. 이제는 산림지역의 생태를 전체적으로 보전하는 복원의 관점을 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미 자연복원지가 인공복원지에 비해 생물종 다양성이 우수하다는 관측 결과가 나오고 있다. 울진 산불의 경우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뛰어난 법정보호구역이 피해를 봤기 때문에 이 같은 논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은 사회적 협의 과정을 빼놓고 논하기 어렵다. 산주와 주민들은 대부분 경제성이 있는 나무를 원한다. 소나무가 산불에 취약한데도 다시 소나무를 많이 심는 것도 이 같은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소나무는 송이버섯 배양목이고, 목재로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산불 예방적 관점, 생태적 관점에서는 소나무를 덜 심는 것이 보다 나은 결론이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 박사는 “임학자의 시선, 생태학적 관점, 산주들의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많은 의제에서 시민 참여와 거버넌스가 중시되듯 산불 피해 복원에서도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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