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불수감꽃

전북 땅에선 왼손잡이를 ‘외약대재’라 불러. 강원도에선 왼뺑이, 경기도는 엔손잽이, 전라도 전역에선 외약잽이, 경상도는 왼재기, 제주도는 왼광이, 왼손둥이, 충청도는 왼잽이…. 다양도 해라. 최근 인기 드라마에 제주 사투리를 자막으로 깔아주던데 재밌덩만. 저 아까운 토종말이 사라지면 어쩐다지 걱정이 성큼 들었다. 친구 중에 왼손잡이가 있는데 ‘외약대재’라 불러줬더니 무슨 콘스탄티누스 대제나 되는 양 왼손을 까딱까딱.

인도 동북부가 고향인 불수감나무는 감귤류로 열매가 마치 탱화 속 부처님 손마디를 닮았다. 과거 십장생도나 문방도에 수복을 상징하며 그림 속에 등장한다. 천혜향의 향기나 마찬가지, 빛깔도 노랗게 익어. 이 열매는 밝은 대낮 같은 흰꽃을 피운다. 오월 봄날이 깊고 곳곳에 석탄일 연등이 내걸리고 있어. 친구 스님은 올해도 내 이름의 연등을 달고 사진을 찰칵. 쥐꼬리 원고료 오면 ‘시주’라도 바쳐야겠다. 불수감꽃만 못해도 연등꽃이 핀 산사는 아름답겠다. 마음 가득 누군가의 오른손 오른팔, 누군가의 왼손 왼팔인 이웃들이 세상을 불 밝히며 공덕을 쌓기 때문에 이나마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것이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3개 국어 정도는 ‘그까이꺼’ 쉽게 해. 가령 “핸들 이빠이 꺾어라잉!” 같은 말. 또 세상의 모든 성인들을 다 모셔다가 믿는 종교 백화점이기도 해. 봄에는 광장에다 석탑 연등을 달고, 겨울이면 성탄 트리에 불을 밝히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겨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를 향한 개종 시도는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종교 예식에 참여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다들 기피하는 일, 그러니까 골목 청소나 화장실 청소, 설거지 같은 궂은일을 행함이 신심 깊은 실천이 아닐까. 다들 돈벌이에 뾰족해서 화가 차 있고 타인을 향해 거침없이 무례한 세태다. 좀 나긋나긋하면 오죽 좋아. 문자도 쌔~하게 날리지 말고, 불수감꽃 ‘손목댕이’로 전쟁 같은 삿대질도 멈추고 말이다. 신비하고 탄복할 만한 깨달음의 말씀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예쁜 말이 바로 부처님 말씀이요, 예수님 말씀이다. 기이한 뭘 찾아다니지 말아라. 별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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