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책‘만’ 말고 ‘영상’도 위한 소설···OTT와 손잡은 소설가들

2022.06.08 06:00 입력 2022.06.08 10:51 수정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손잡고 기획한 ‘언톨드 오리지널스’ 시리즈로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출간한 배명훈(왹쪽)과 다음 시리즈 출간을 앞두고 있는 소설가 김중혁.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손잡고 기획한 ‘언톨드 오리지널스’ 시리즈로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출간한 배명훈(왹쪽)과 다음 시리즈 출간을 앞두고 있는 소설가 김중혁.

화성 침공이 계획되던 시절 병력을 주둔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페이스 콜로니 사비. 화성 침공 계획이 흐지부지되면서 이곳은 무법과 폭력, 비리가 판치는 별 볼 일 없는 도시가 됐다. 원기둥 모양의 사비는 마치 휴지심 안쪽에 지어진 도시와 같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 대신, 맞은편 도시의 머리꼭대기가 보인다. 인공중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2분에 한 바퀴씩 빠른 속도로 자전하는 사비에는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물리학이 적용된다. 총으로 과녁을 맞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총알이 휘어지며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기둥 맞은편에서 반대편에 있는 과녁에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천재 킬러가 있다.

소설가 배명훈의 신작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자이언트북스) 이야기다. 연작소설집 <타워>에서 674층, 인구 50만명이 사는 빈스토크라는 고도로 복잡한 도시국가를 능란하게 설계했던 배명훈이 창조한 세계치곤 단출하다. 원기둥 형태의 단순한 우주도시,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를 보는 듯 비리와 폭력이 판치는 사비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천재 킬러 한먼지다.

구조는 단순하고, 캐릭터와 액션이 돋보인다. 이는 의도된 설정이다.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은 배명훈이 소속된 작가 에이전시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CJ ENM이 손잡고 원천 지식재산권(IP) 발굴을 위해 기획한 ‘언톨드 오리지널스(Untold Originals)’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리즈다. ‘언톨드 오리지널스’는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함께 기획한 IP를 먼저 단행본으로 출판한 후, 이를 영상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작가 배명훈을 필두로 소설가 김중혁·천선란·김초엽이 참여할 예정이다.

배명훈의 소설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표지

배명훈의 소설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표지

OTT 경쟁 치열해지면서 원천 스토리 발굴 절실
작가 에이전시와 손잡은 CJ ENM
배명훈 김중혁 김초엽 천선란 등 유명 작가들 출간과 동시에 영상화 검토
장면과 대사,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로 영상화 염두에 둔 창작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증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OTT마다 원천 IP를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한 공모전이 많이 열리고 있지만, 이같이 유명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경우는 처음이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관계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작가와 에이전시, 제작사가 윈윈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해보고자 기획했다”고 말했다.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시도다. 영상화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CJ ENM과 협의를 거쳐 집필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영상화에 적합한가’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배명훈은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썼기에 재미있는 캐릭터를 많이 만들려고 했다. 설명을 줄이는 대신 장면을 많이 넣었다”며 “SF 장르이다보니 구현 가능성을 감안해 너무 화려하거나 복잡하게는 못 만들고, 우주를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도시 안에 있는 장면을 쓰면서 볼거리가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소설엔 특색 있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분량도 본격 장편이 아닌 경장편 분량이다.

<내일은 초인간> <나는 농담이다> 등을 펴내고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김중혁도 ‘언톨드 오리지널스’ 시리즈 작품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미 초고를 끝냈다. 김중혁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쓸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라며 “갖고 있는 이야기 중 영상화에 어울릴 만한 이야기를 선정하고, 제안하고 토의를 거쳐 결정한다”고 말했다. 김중혁은 “소설 쓰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고르느냐의 차이다. 영상화에 어울리려면 묘사보다는 대사가 많아야 한다. 인물 표현도 작가의 설명보다는 대사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OTT에서 소설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삼아 영상화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우 정세랑이 직접 각본을 맡았다. 10만부가 넘게 판매된 김초엽의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은 지난 2월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과 영상화 계약을 체결했다.

작품 판권이 팔려도 실제로 영상화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언톨드 오리지널스’는 소설 창작과 영상화 검토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관계자는 “원작 출판 후 2차 저작물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CJ ENM 관계자는 “이들 소설의 영상화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아직 구체적인 영상화 계획은 잡히지 않았지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언톨드 오리지널스 프로젝트에 참여 예정인 소설가 김초엽(왼쪽)과 천선란

언톨드 오리지널스 프로젝트에 참여 예정인 소설가 김초엽(왼쪽)과 천선란

허물어지는 콘텐츠 경계…왓챠도 안전가옥과 손잡고 공모전
영상화를 전제로 한 소설 창작…작가에게도 새로운 시도
영상산업에 새로운 상상력 활력소 될까


OTT가 유료 구독자를 두고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원천 IP 발굴을 위한 시도가 다양화되고 있다.

왓챠는 장르 전문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과 함께 스토리 공모전을 시행하고 있다. ‘이중생활자’를 주제로 한 공모전은 매력 있는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 발굴이 목적이다. 단편소설, 시리즈, 웹툰 스토리 등 3개 부문을 모집하고 있다.

왓챠 관계자는 “수상작은 출간, 영상화 등 해당 스토리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확장할 예정”이라며 “콘텐츠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점에서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드라마·영화·웹툰 등 성격에 맞게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전가옥은 2017년 설립 이후 70여명의 창작자들과 함께 100여개의 스토리를 기획·개발했고, 공모전도 지속적으로 연다.

CJ ENM은 2017년부터 신인 창작자 발굴 육성 사업인 ‘오펜’(O’PEN)을 통해 자체 IP와 창작자를 확보해왔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왕이 된 남자> 등을 쓴 신하은 작가가 오펜을 통해 발굴됐다.

다양화되는 OTT의 원천 IP 발굴에 기성 작가들이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 김중혁은 “OTT에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작가들의 영상화 참여 시도로 영상사업에 또 다른 활력이나 변별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왓챠와 안전가옥이 함께 원천 IP 발굴을 위해 ‘이중생활자’를 주제로 공모전을 열고 있다.

왓챠와 안전가옥이 함께 원천 IP 발굴을 위해 ‘이중생활자’를 주제로 공모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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